안녕하세요..전영선입니다.
여름방학기간 공지합니다.
7/30,8/6일로 2주간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2주라는 기간동안 혹시 제가 보고싶거덜랑 Holinko로 오시면 언제든지 책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무한 제공하겠습니다.
그리고 8/13, 8/20일은 선생님 초빙을 하도록하겠습니다.
양일중 하루를 조명진부목사님께서 아이들과 종이로 다양한 활동을 해주실거라 기대가 되오며
마찬가지로 양일중 하루는 능력있는 많은 부모님들 중 한 분이 맡아주시어 아이들에게 다양한 활동의 기회가
될 수 있는 2주간의 시간이였으면 합니다.
아무쪼록 더운날씨 저는 이사 잘~하고 재충전하여 다시 한글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주간의 수업을 통해 아이들 특성에 따라 수업계획표를 작성하였습니다.
제가 판단하고 있는 것외에 이런 부분들이 추가되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신다면
대 환영입니다.
http://www.storrskoreanchurch.org/wp-content/uploads/2010/02/수업진행계획sttorskoreanchurch2.pdf
지난 수년간…
솔직히 정확히 몇년간인지 모르기도 하고, 셀 수도 없지만…
한글마당, 한국어 교실, 한글학교. Korean school 등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던
어떤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 주간을 마치고 모두가 편히 발 뻗고 쉬고 싶어하는 금요일 저녁에
반짝이는 두 눈으로 올망 졸망 아이들을 모아놓고
한 명 한 명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한 자 한 자 글자를 준비하고
하나 하나 교재를 만들고
한가지 한가지 간식을 손에 들고 오셔서
가슴으로 아이들과 함께 해주셨던
그 어떤 분이 있었습니다.
오는 금요일,
7월10일이 그 분과 아이들이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이랍니다.
어찌 그 고마운 사랑을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은
그 분의 사랑을 받은 어린이들이 ….
마지막 수업은 6시로 한 시간 일찍 시작합니다.
그리고 7시에는 아이 어른 모두가 함께 하는 시간을 갖을 것입니다.
시간 있으신 분들은 꼭 참석해주시고 시간 없으신 분들은 시간을 내셔서 반드시 참석해주십시오
* 아, 그리고 성서마당은 교묘히 안합니다. ㅋㅋ *

두 달 전에 한국어학교 아이들과 심은 풀과 꽃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데요,
그중 코스모스로 추정되는 녀석의 얼굴입니다. 귀엽죠?
날씨가 선선하다보니 가을인줄 알고 나왔나…?
우리 한국어학교에서 교사를 구합니다. 제가 7월중순이나 말에 떠나니까 8월 혹은 9월부터 일하실 수 있으면 좋지요. 시간은 매주 금요일 7시부터 8시 30분까지구요.
2년여 매주 아이들과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은요, 한국어 교실은 한국어와 한국에 대한 흥미를 심어주는 것을 우선 목적으로 하는 곳이지, 정작 일주일에 한 번 한시간, 정도로 한국어 실력을 크게 향상시키려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집에서 아이들 한국어 공부 시키실때 가장 힘든 점이, 아이가 한국어를 안하려든다, 한국어를 싫어한다, 는 것이라고 해요.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 아이들끼리 모여서 함께 공부하고 놀고 집에서 열심히 한 한글공부도 가져와서 선생님과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그러는게 재미라는거죠.
그러니까 크게 부담갖지 마시구요, 전공, 학력, 나이, 성별 불문 (단, 성격은 좀 좋아야되요 ㅋㅋ),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어로 신나게 놀아주실 분이면 됩니다. 물론 교재도 있고 숙제도 있어요 (마냥 놀지는 않습니다^^). 만들기나 놀이도 한국어를 이용하는 놀이를 찾아서 하구요. 제가 가기 전에 만나서 자료및 경험을 전해드리면 더 수월하겠죠.
답글 달아주세요.
지난 한국어 교실 시간에는 여러가지 씨앗들을 심고
이름을 써보고 씨앗과 그 꽃 혹은 열매 그림을 그려보았는데요,
주최측의 농간으로 제가 좋아하는 꽃인 코스모스와 안개꽃씨를
철도 때도 없이 강제로 심게 했구요,
또 제가 좋아하는 야채인 당근과 상추도 심었습니다.
현욱이는 해바라기를 유난히 좋아해서 남은 해바라기씨를 집에 가져갔지요.
여하튼, 그때 심은 여덟가지 씨앗들에서 싹싹싹이 났어요~
일주일 집 비운동안 걱정했는데 흙이 다 말랐어도 싹은 다행히 살아 있어서
물을 주었더니 힘을 내서 다시 쑥쑥 크고 있답니다. 휴~
오른쪽에 젤 열씨미 크는 선수가 나팔꽃이구요
그 왼편 뒤로 무순처럼 무성한게 안개꽃입니다.
(경희가 그꽃이 젤 맘에 든다고 잔뜩 심었다눈….)
젤 왼편에 키가 큰 선수는 해바라기구요.
다른 친구들 씨앗도 잘 크고 있겠죠? 헌이 당근도?
참, 늘 그랬지만 씨앗 심을때도 많이 도와주신 태연씨 감사합니다~
이제 마당에 내다 심어야지요?
한국어 교실 준비하다가 우연히 읽은 오래된 기사.
결핍을 통한 결실을 보여주는 재일한국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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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백인 남성의 질문”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베를린의 하룻밤
머물고 있는 뒤셀도르프에서 베를린으로 사흘간의 짧은 여행을 떠났다. 내가 처음 베를린을 방문한 것은 1983년이다. 물론 아직 동서로 분단돼 있던 시대였다. 그 이후 스무 번 넘게 이 도시를 찾았을 것이다. 나는 베를린을 좋아한다. 그 첫번째 이유는 미술관, 두번째는 오페라와 음악, 세번째는 동물원, 특히 보노보나 고릴라는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는다. 거기에 크로이츠베르크의 터키인 거리에서 먹는 감미로운 터키요리도 보태야겠다. 하지만 내 마음을 가장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이 도시에 가면 역사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 동서분단과 냉전, 그런 현대사의 통절한 기억이 베를린 도처에 노출돼 있다. 이 도시 자체가 현대사의 생채기인 것이다.
이번 베를린 방문의 목적은 재독 동포와 독일시민이 결성한 ‘Korea Verband’(코리아협의회)라는 단체가 주최하는 자그마한 모임에서 강연하는 일이다. 나는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일본어고 직장도 일본에 있어 우인이나 지인 대다수가 일본인이다. 지금까지 독일에 초청해준 것도 쾰른의 일본문화회관이고 그 때문에 독일 각지에서 강연했을 때도 청중의 대부분은 ‘일본’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얘기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없다는 아쉬움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이번 강연회는 내겐 정말 고마운 기획이었다. 강연회장은 옛 동베를린쪽의 학케셰르마르크트 역에 가까운 화랑이다. 그 일대는 예전엔 유명한 유대인 거리였으나 나치의 대두와 함께 그 거리 유대인들이 쫓겨나거나 강제수용소에서 학살당해 지금은 자취가 남아 있지 않다. 동서독 통일 뒤 거리는 재개발돼 이젠 젊은이와 아티스트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가 됐다.
좁은 화랑에 주최자의 예상보다 많은 청중이 모였다. 참석한 재독 동포는 여성이 많아 물어봤더니 60~70년대에 간호사로 독일에 온 사람들이었다. 같은 시대에 탄광 광부로 온 남성들과 함께 문화도 생활습관도 다른 나라에서 열심히 일해 그 수입의 대부분을 고국에 송금했다. 이 사람들은 한국의 개발독재정권이 펼쳐온 ‘인력수출’ 정책의 산증인들이다.
강연 제목은 ‘디아스포라와 언어’. 조선어로 강연하고 젊은 재독 동포여성이 독일어로 통역했다. 5살 때 양친과 함께 독일에 왔다는 그 여성은 역시 조선어를 독일어로 통역하는 건 자신이 있으나 독일어를 조선어로 통역하는 데는 그다지 자신없어 했다.
이 지면에 강연 내용을 자세히 쓸 수는 없다. 아주 간단히 요약해보겠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 결과 일본어를 모어로 해서 자란 재일 조선인 2세 입장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다.
‘모어’와 ‘모국어’를 구별하고 ‘모국어의 권리’와 마찬가지로 ‘모어의 권리’도 옹호해야 한다. 그것이 한 국가나 사회속의 언어 소수자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며, 동시에 그 국가가 편협한 내셔널리즘으로 전락하는 걸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재일 조선인이나 재독 동포 등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조선민족이 경험한 식민지지배, 전쟁, 냉전과 민족분단이라는 근현대사 과정에서 세계로 이산하게 됐다. 그 2세와 3세는 조선어와 조선문화를 잃어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민족’이라는 틀 바깥으로 사라져가는 존재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조선어도 조선문화도 모르는 너희들은 이미 조선인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선문화’라는 걸 갖고 있는 사람이면 ‘조선인’이라는 게 아니라, 조선인인 우리가 자기표명을 할 때 그것이 조선문화가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와 같은 좁은 틀을 벗어나 코리안 디아스포라도 포함한 더 넓고 유연한 ‘민족’의 틀을 구상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식민지주의와의 투쟁을 통해 자기 문화를 표명해야 하며, 거기에 자신을 가져야 한다. 식민지지배를 받은 통한의 역사를 지닌 우리는 그럴수록 자기중심적인 내셔널리즘을 뛰어넘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그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 디아스포라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크다.
통역 포함해 90분 정도의 강연을 마치고 질의응답에 들어갔다. 좋은 질문이 많이 나왔으나 그 가운데서도 목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초로의 한 백인 남성이 이런 질문을 했다. “나는 중남미 칠레에 체류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선 동유럽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2, 3세대를 거치면서 ‘칠레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갖게 됐다. 아이덴티티라는 건 타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이지 식민지지배나 차별과는 무관한 것 아닌가?”
일본정부가 이 의견을 들었다면 틀림없이 기뻐했을 것이다. 일본정부는 일관되게 재일 조선인이 모두 동화돼서 재일 조선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소멸되기를 고대해왔다. 그렇게 돼야 식민지지배라는 죄과를 증언할 산증인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므로.
다음은 내가 한 대답이다. “아이덴티티가 타자와의 관계에서 생겨난다는 건 맞지만, 실제로는 어떤 타자와의 관계에도 권력관계가 보이지 않게 작용한다. 식민지지배자와 피지배자, 여자와 남자, 아이와 어른, 소수자와 다수자, 모두 그렇다. 그것을 무시하고 마치 순수하게 대등한 관계가 존재하는 듯한 전제를 까는 건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중남미의 예를 든다면 거기서 상기해야 할 제1의 타자는 원주민이 돼야 한다. 원주민들은 재일 조선인이 그런 것처럼 지금도 ‘나는 누군가’라는 질문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 남자는 다른 독일인 청중에게 “내 처는 코리안인데,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모두 내가 가르쳐주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그것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것이야말로 식민주의다!” 즐겁고 의미있는 하룻밤이었지만 숙소로 돌아오는 내 가슴은 떨쳐버릴 수 없는 분노로 가득찼다.
번역/한승동 선임기자, 2006, 8, 24,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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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요즘 ‘은, 는, 이, 가 ,을 ,를, 에게… ‘ 하는 조사를 배우는데요,
얘들이 왜 이렇게 헤매나 했더니 우리가 대화에서 조사를 잘 쓰지 않기 때문인듯.
이를테면, “이거 엄마 갖다드려라.” (조사 없죠?)
때로는, “엄마를 갖다드리라니까~” 라고 하기도 하지요 (강조용법인가요?)
여하튼 애들 말이 ‘영희가 돼지를 밥을 줘요’, 해도 하나도 안이상하다고…흑흑
‘을, 를’ 안쓰는건 예사고, ‘에게’는 거의 안쓰고 대신 ‘한테’ (나만 그런가?).
이러다가 조사가 없어지지 않을까….
없어지는 날까지 책읽기로 조사를 익히는 수밖에.
아래에 관심있으신 분은 제게 알려 주세요. inkiechung골뱅이uos.케이알
On Wed, Jan 21, 2009 at 3:54 AM, wrote:
> Dear Dr. Chung,
>
> My wife and two children (10, 11 years old) intend to travel to Korea in the
> summer and wish to learn some conversational Korean during the Spring
> semester. We are Korean-American, and my wife and I speak and understand a
> little Korean. The children have no Korean language proficiency. Our
> primary residence is in New York City, but we spend weekends at our home in
> Clinton, CT.
>
> I was wondering if you or someone you know, preferably Korean (with good
> teaching credentials), might be interested in giving us private group
> lessons on Saturday mornings at our home in Clinton.
>
> Yours,
한글학교 준비하다가 이 갈이에 대한 예쁜 얘기가 있길래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