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흘러들면서 안개 자욱한 날들이 다가옵니다.
특히 썸머타임이 시작 되고 어두움이 다시 찾아 온 도로에서 안개까지 달려오면 운전하기에 무척 부담스럽습니다.
늘 다니는 길인지라 도로를 찾지 못해 헤매는 일은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시계가 짧아진 상황에서는 언제 어디서 사슴이라도 갑자기 튀어 나오지는 않을까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 학문이 뛰어난 장해(張楷)라는 선비가 있었는데…’로 시작하는 ‘오리무중’의 유래에 대해서는 그렇다 치고, 의미는 설명하는 것이 불필요 할 듯합니다.
운전은 두 눈으로 길을 보며 한다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우리 삶이라는 것 자체가 ‘오리무중’을 달려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한치 앞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예수가 마지막 때에 대해 말합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오늘일지 내일일지 아니면 십년 또는 천년 후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긴 예수 역시 세상으로 올 때,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언제 이루어지게 될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차피 알 수 없는 내일에 대해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라고 말 했는가 봅니다.
오세훈 55.0%, 박영선 36.5% 라는 지지도 조사결과는 ‘오리무중’입니다.
더구나 18~29살 연령대에서 박영선 21.1%인 것에 반해 십년전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겠다고 덤벼들었던 오세훈에게 60.1의 지지율을 보였다는 결과는 ‘五里무중’이 아니라 ‘十里무중’도 넘어서고 있는 듯 합니다.
사순절 서른 첫째 날,
아무리 十里 가 아니라 百里 千里가 안개 속에 갇혀 있다 하더라도, 그래서 예수 역시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고 하더라도 분명 한 것은 언제나 정의로운 길에 서서 항상 옳은 일 행하기를 포기 하지 않는다면, 내일 일지, 백년 후가 될지는 모른다 하더라도 반드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는 것입니다.
나는 진실로 정의로운 길에 서서 온전히 옳은 일을 하고 있는지 안개 속에서 눈을 감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