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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 2012

“기린이얏”


얼마 전 아이들을 모두 학교에 내려주고 난 후 좌석을 점검하다가 장난감 하나를 주웠습니다.
천으로 만들어진 기린 모양의 장남감인데 세워 놓게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네 발 끝에 자석이 달려 있어서 냉장고등에 붙여 놓을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어느 아이 것인지 생각 해 봤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주인을 찾아 주기는 해야 할텐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네 발에 달려있는 자석을 이용해서 버스 천정에 꺼꾸로 붙여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버스를 타는 아이들 마다 천정에 붙어있는 기린 장남감이 신기한지 ‘저게 뭐야?’ 하고 내게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물음에 장난기가 발동한 내가 지극히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거미야’ 라고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엥? 저게 무슨 거미야, 기린이잖아’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는 ‘너 천정에 붙어있는 기린 봤어? 저건 천정에 붙어있잖아. 그러니까 거미지’ 라고 말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에에, 아니야, 거미 아니야, 기린이야’라고 말하며 피식 거리고 웃는 것이었습니다. 속으로 ‘그래 어디 두고보자’하고는 다음 날 아침 롤리팝을 잔뜩 버스에 싣고 중학교 아이들을 태우러 가서는 다시 물어봤습니다.

“애들아, 저기 천정에 달려 있는것이 뭐지?”
그러자 몇몇이 대답을 합니다.
“기린이잖아”
아이들의 대답을 들은 후에 롤리팝을 꺼내서 맨 앞 좌석에 앉아있는 데이빗에게 흔들어 보여주면서 다시 물어봤습니다.
“데이빗, 저기 천정에 달려 있는 거미가 뭐지?”
그러자 눈치 빠른 데이빗이 얼른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미”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롤리팝을 데이빗에게 건네주면서 버스안에 있는 아이들이 다 들을 수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우와~ 맞았어, 너 저게 거미인줄 어떻게 알았냐, 너 정말 똑똑하다, 천재다, 천재!”
그리고는 다시 아이들에게 물어 봤습니다.
“애들아, 저게 뭐냐?”
그러자 아이들이 일제히 외쳤습니다.
“거미~”

물론 아이들은 거미가 아니라 기린 모양의 장난감이라는 것을 압니다. 또한 내가 아이들과 장난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 장난감이 기린이든 거미이든 그것이 무슨 대단하게 지켜져야 할 신념도 아니고 불변의 진리나 사상도 아니며 기린 장남감을 거미라고 한다고 해서 한 순간 온 세상이 뒤바뀌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또한 아무리 그렇게 말 한다고 해도 기린이 거미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저 롤리팝을 하나 받으면 그만이기에 한 번 웃으면서 거미라고 말하는 것 뿐이고 그렇기에 나 또한 아이들에게 롤리팝을 흔들면서 ‘이게 뭐냐?’ 하고 물어 보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이 장난이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일학년 여자아이 애쉴리에게는 도저히 용납 할 수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롤리팝이 갖고 싶기는 하지만 기린을 거미라고 말할 수는 없었던 애쉴리가 내게 말합니다.

“나도 롤리팝 줘”
“저기 천정에 달려 있는 것이 뭐지?”
“기린”
“애쉴리 저기 달려 있는 거미가 뭐지?”
“기린”
아이들이 거미라고 말 하라고 아무리 외쳐도 애쉴리는 자기집에 가까와 지고 내려야 할 때가 될 때까지 거미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집 앞에 버스가 서고 버스 문이 열리자 애쉴리가 울상이 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는 ‘거미’라고 대답하고서 내 손에 들려있는 롤리팝을 낚아채서는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그러더니 한 두걸음 버스로 부터 떨어져서 나를 휙 돌아보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기린이얏!”

세상을 지나가다 보면 권력이나 돈이라는 또는 천당이라는 롤리팝에 빠진 어른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롤리팝을 얻기위해 옳은 것을 그르다고 말하며 그른 것을 옳다고 우깁니다. 최근 남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보진영의 추태는 권력이라는 롤리팝에 빠진 어른들이 얼마나 추악 해 질 수 있는 가하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여 그저 씁쓸할 뿐입니다.
그런가 하면 돈이라는 롤리팝에 빠져 사대강을 파헤치고, 국영기업들을 팔아먹는 이명박 정권의 롤리팝 사랑은 씁쓸함을 넘어 가엽기까지 합니다. 더욱이 천당이라는 롤리팝에 빠진 사람들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언어, 경제, 학력, 사상, 성별, 지역, 성적성향 더나아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저주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을 볼 때면 씁쓸함이나 가여움을 넘어 화가 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얻게 되는 롤리팝은 권력이 아니라 외면일 것이며 돈이 아니라 수치일 것이고 천당이 아니라 지옥일 것입니다.

애쉴리와 같은 어른을 만나고 싶은 세상입니다.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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