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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5 2012

표지판과 안내방송

예전에 싱가폴에서 선교사역을 하던 때, 일년의 반 이상은 선교여행으로 보내야 했던 것에 지쳤던 지라 미국으로 오면서 이제는 한 곳에만 진득히 눌러 앉아 있겠다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팔자에 끼인 역마살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미국에서도 역시 사방을 쏘다니며 살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싱가폴에서는 다른 나라로 여행을 했던 것에 비해 미국에서는 같은 나라 안에서 여행을 하게 된다는 것이며 또한 싱가폴에서의 여행은 비행기는 물론 배, 기차, 버스, 트럭 심지어는 오토바이등 온갖 탈 것들을 이용했던 것에 비해 미국에서는 오로지 비행기 만을 여행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미국에서의 여행은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본다든지, 기차를 타고 늘어지게 잠을 잔다든지, 오토바이를 타고 실컷 바람을 맞는 즐거움은 물론이고 선착장에 털썩 주저 앉아 수평선 건너 다가오는 배를 기다리는 기쁨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다리는 고사하고 팔꿈치, 엉덩이도 제대로 욺직 일 수 없는 이코노미 좌석에 앉아 앞좌석 등받이에 코를 밖고 오로지 내릴 때만을 기다리는 고해의 연속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이곳 동네의 공항이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곳임으로 인해 어디를 가든 두번 또는 세번 비행기를 갈아타야하는 덕에 결국 공항에서 공항으로 이어지는 고난의 행군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시간의 여유를 두고 다니는 여행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미국에서의 여행은 얼마나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비행기를 갈아 타는냐에 따라 여행의 성공여부가 달려 있게 되었고 그를 위해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부터 승무원이 알려주는 대로 내가 타야하는 비행기가 대기하고있는 터미널과 게이트를 미리 잘 기억해두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표지판과 안내방송에 따라 달음질 해야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특히나 이번 처럼 비행기를 갈아타는 시간이 채 50분도 되지 않는 그리고 지하 통로로 건물들이 연결되어있는 아틀란타 공항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고 승무원이 환승객들을 위해 터미날 번호를 불러주는 순간부터 긴장은 시작됩니다.

“뉴욕은 D12, 시카고는 C27 … 하트포드는 E37…”

승무원이 불러준 터미날 이름을 입속으로 외웁니다. ‘E37, E37, E37…’ 그리고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E, E, E…’를 외치면서 지하 기차를 타는 곳으로 마구 달려 내려갑니다. 기차 출입구에서 먼저 ‘E’ 자를 찾습니다. 그런후 문에 바짝 붙어서서 기차를 기다립니다. ‘E, E, E,…’
기차를 타자마자 벽에 붙어있는 안내 지도를 봅니다. ‘여기가 B 니까 C, D, E 세번째 내리면 된다.’ 그리고는 안내 방송에 귀를 쫑끗 기울입니다.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다음은 터미날 E 입니다.”

안내 방송이 나오자 마자 입구에 딱 붙어서서 문이 열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기차에서 내려 어느 쪽에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고개를 휘저어 살피고는 가까이 있는 쪽의 에스컬레이터로 마구 뛰어갑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이제는 게이트 번호를 외웁니다. ’37, 37, 37…’
지상으로 올라가는 즉시 표지판을 봅니다. 오른쪽은 1에서 12까지 왼쪽은 26에서 37까지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필이면 맨 마지막 게이트입니다. 시계를 보니 25분 남았습니다. 연신 입으로는 ‘Excuse me’를 외치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가면서 눈으로는 터미날 번호를 보고 머리로는 ‘37’을 되뇌입니다.

“오른쪽이 짝수이면 왼쪽이 홀수, 여기가 31이니까 다음은 33… 그러면 다음 35 … 이 비행기 놓치면 오늘 집에 못간다!”

드디어 게이트 37. 그리고 안내판을 봅니다. 예쁘게 ‘하트포드’라고 쓰여있습니다. ‘맞다!’ 환호성과 함께 창밖을 보니 내가 타고 갈 비행기가 얌전하게 앉아있었습니다. 출발시간 10분 전이었습니다.
역시 표지판을 잘 보고 안내 방송을 잘 들으면서 가르쳐 주는 대로 따라가면 목표한 곳에 안전하게 도착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 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싫든 좋든 또는 알게 모르게 부모로서, 교사로서, 선배나 동료로서 정치, 경제, 종교등 삶의 곳곳에 표지판을 세우고 안내방송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수 없이 많은 가짜 표지판과 엉터리 안내방송들을 보고 들어왔음을 압니다. 한말의 을사조약부터, 이승만정권의 사사오입, 박정희의 군사 구테타와 유신독재, 온갖 조작된 간첩사건들, 전두환의 ‘정의사회구현’ 최근 이명박의 사대강, 한미FTA, 천암함 북한폭침,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이라는 안내방송들 게다가 붕대감은 박근혜의 손 그리고 정권에 기생하며 내뱉는 조중동과 관변 단체들의 쓰레기 같은 안내방송들, 더불어 천당장사에 미친 교회들이 쏱아내는 말들, 지금 다시 불거지고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표지판까지, 하지만 거짓된 표지판과 안내방송이 그것을 보고 듣고 따라온 사람들을 잘못 된 곳으로 가게하고 그 결과 개인의 삶 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 전체를 극심한 혼돈에 빠뜨리게 된다는 것 뿐 아니라 한 번 잘못된 표지판과 안내방송을 고치기위해서는 막대한 희생과 자원의 낭비가 뒤 따라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과연 내가 세우고 있는 표지판과 내가 전하고 있는 안내방송은 바른 목적지에 안전하게 다다르게하는 믿을 만한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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