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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 2020

<2020 사순절 이야기 – 스물 둘>

신앙, 믿음 이라는 것에는 몇 가지 필수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주먹이든 돈이든 권력이든 아니면 과학이든 별이든 달이든 또는 부처나 알라 또는 시바 그것도 아니면 관우나 장비나 조상 심지어는 고무신짝이라고 하더라도 무언가 믿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대상을 믿는 목적이라는 것인데 다시 말하자면 왜 믿는가 하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살고, 병 안 걸리고, 출세하고, 교통사고 안 나고, 좋은 대학 들어가고, 돈 많이 벌고 하는 것 등이 믿는 목적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즉 믿는다면 믿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낭당 수호신을 믿는다면 하다 못해 정한수라도 떠올려야 한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 요소들의 순서가 바뀌게 되면 믿음이라는 것이 맹신과 오만이 되고 맙니다. 대상에 따라 믿는 것이 아니라 목적에 따라 대상을 고르거나 아니면 만들어내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최고의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는 율법학자에게 예수는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이웃이 고통을 당하고 있고 또 고통을 당하게 될 위험에 처 할 수 있음에도 예배를 위해 대가리 들이밀고 모이는 행동을 하는 자들은 결코 ‘네 이웃을 네놈과 같이 사랑’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교회에는 가면 안 됩니다. 야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어 낸 귀신 나부랭이에 하나님이라는 이름만 붙여 놓았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내가 믿는 하나님이 원하는 행동을 하는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행동에 맞춘 하나님을 믿는 것인지 삶을 돌아보는 날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이야기>


사순절은 ‘재 수요일’로부터 시작해서 부활절 전 토요일까지 일요일을 제외 한 사십 일간 입니다. 사순절 이야기도 이 기간에 맞춘 마흔 번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금년 사순절 기간은 ‘COVID-19 사태’로 인하여 교회에서 모이지 못합니다. 해서 일요일에는 설교 대신 ‘기독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교회에 ‘얹혀살기’를 시작한 이래 이 날은 항상 바쁜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일요일부터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쩌면 불안하거나 섭섭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오히려 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뒷마당에 나가 봅니다. 시리게 파란 하늘아래 수선화(Daffodil)와 크로커스(Crocus)가 꽃 몽우리를 맺었습니다. 아직 나르시서스(Narcissus)는 꽃 몽우리를 맺지 않았지만 이름 모를 이 아이는 이미 꽃을 피웠습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외칩니다.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어미가 자식을 달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니 너희가 위로를 받으리라.” 세상은 지금 불확실성의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는 듯합니다. 두 주간의 휴교라고 시작한 lay-off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 한 것은 겨울이 끝나면 봄이 오고 꽃이 피듯이 이 어둠의 터널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반짝이는 하늘과 환하게 웃어주는 꽃송이들을 만나게 되리라 믿는 것입니다. 사순절 중 네 번째 맞는 일요일… 손을 맞잡으며 모이지는 못하지만 세상과 이웃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전하는 날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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