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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 2020

<2020 사순절 이야기 – 열 아홉>


새벽에 집을 나가 저녁에 돌아오던 날들이 멈춰 섰습니다. 평소 보이지 않던 것들인데 아니 보지 않았던 것들인데 일도 못하고 돈도 못 벌면서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니 눈에 띄는 것들이 드러납니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에 음식을 한다, 청소를 한다 하며 집안을 비집고 다니다 보니 아내의 영역을 침범하게 됩니다. 주방 구석에 묻은 먼지며 세척기 안쪽에 끼어있는 물때도 보입니다. 냉장고를 열어 보고 pantry를 뒤져 오래전 사다 놓는 파스타 상자를 흔들어봅니다. 아내에게 무언가 한마디 하려는 마음이 드는 순간 어찌 알았는지 아내가 먼저 낮은 목소리로 찬찬히 말합니다. “그냥 둬라.”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중국의 이혼율이 급증 하고 있다고 합니다. 외신들은 원인을 ‘as couples spend too much time together during coronavirus home quarantine (코로나바이러스 자가 격리로 인해 부부가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는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라고 했다지만 집안 식구를 원수로 만드는 자 역시 바로 자기가 아닌가 합니다. COVID19 사태로 인한 어렵고 힘든 날들은 내게만 닥쳐 온 것이 아닙니다.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 더욱 늘 가까이 곁에 서있는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겪고 있는 고통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극복하고 이겨가는 길 역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결코 ‘너무 많은 시간’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소원했던 친구나 이웃이 있다면 전화나 이메일으로라도 안부를 물어주는 사순절의 하루가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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