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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 2008

6/22 – 헤롯 이야기

이런 벌써 목요일이 되었습니다. 성서마당은 지난 금요일에 있었는데 뭘 하느라 항상 늦는지… ㅊㅊㅊ

여하튼 지난 20일 금요일은 이 동네 학교들이 방학을 한 날입니다. 덕분에 스쿨버스 운전사로서 수두룩한 Thank you card와 더불어 gift card를 지갑 가득 담고 뿌듯한 맘으로 헤롯 이야기를 시작 했습니다.

헤롯, 예수시대에 등장하는 헤롯은 여럿이지만 그 대표적인 사람이 헤롯왕이라고 불리는 헤롯으로서 예수가 태어날 당시 유다와 사마리아를 통틀어 한 손에 쥐고 있었던 사람이었고 또 다른 헤롯은 예수가 재판을 받을 때 사마리아 지역의 위임 통치권을 가지고 있었던 헤롯왕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였습니다.
지난 금요일은 주로 헤롯왕 (Great Herod)에 대해 이야기 했었습니다.

이 사람의 아버지인 안티파르토스는 이도메네아(이두매)의 유력한 재력가였다고 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이두매는 에돔족속이 사는 땅으로서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야곱의 후손임을 긍지로 여기며 살아왔던 유대민족에게 있어서 에돔족속은 결코 소통 될 수 없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카베오의 이도메네아 정복으로 인하여 “목이 잘릴래 아니면 거시기가 잘릴래?”라는 강압에 어쩔 수 없이 거시기를 자르고 유대교로 개종을 하기는 했다 하더라도 조상들의 업보로 인하여 결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족속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헤롯의 아버지 안티파르토스는 유대인들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개처럼 벌어 개XX처럼 쓰자”라는 가훈에 따라 로마의 유력한 정치 지도자들에게 뒷돈을 대주는 건전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차곡차곡 쌓아왔던 결과 마침내 자신은 유다 지방의 통치자로 그리고 양정례는 갈릴리의 총독으로 입성 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참 양정례가 아니라 헤롯입니다.
하지만 촛불시위가 날로 확대되면서 아버지 안티파르토스가 궁정이 있는 네에서 암살을 당하자 아들 헤롯 역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청와대 뒷산으로 줄행랑을 칩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는 선현들의 말씀에 따라 아버지가 암살당한 것을 북풍공작으로 받아치고서는 지지도 5% 상승에 힘입어 아버지 시해범을 체포한다는 명목 하에 로마의 탱크를 등에 업고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마침내 예루살렘을 장악해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정권수립의 정통성이 아예 없었던 그로서는 정권유지를 위해 ‘3S’ 정책을 펴기에 이릅니다. 그 결과 헬라식 남녀평등의 관계와 로마식 극장 그리고 아기자기 둘러 앉아 사람 죽이는 경기를 화기애애하게 구경 할 수 있는 원형 경기장까지 구색 맞추어 지어 놓습니다. 더하여 늘 눈에 대들보처럼 구는 유대교 지도자들과의 친목도모를 위하여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어주고 성전세를 징수 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 주었으며 그 대가로 목사놈들(앗, 오타가 났습니다.)은 매일 새벽 방울소리 울리며 헤롯 왕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조찬기도회를 열어주었으며 물론 헤롯은 조찬기도회에서 목청 자랑하는 목사놈들(앗, 또 오타가 났습니다.)의 출석 여부에 따라 녀석들 교회를 급격히 성장시켜주는 자상한 배려 역시 결코 아끼지 않았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이 사건을 보고 “전좃목좃”이라는 즉 ‘전두환이 좋으면 목사도 좋다.’라는 명언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 사람의 머리였습니다. 마치 이명박처럼 뼈저리게 후회하고 닷새 만에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광우병 초기증상같은 증세가 헤롯에게도 있었던지라 에돔 출신으로서 정권유지를 위해 유대의 자칭 왕가인 하스몬의 공주 마리암과 정략결혼을 하기는 하지만 결국 자기 손으로 마리암을 처형 해 버립니다. 어떤 사가들은 헤롯이 마리암을 너무도 지독히 사랑한 나머지 질투에 눈이 멀어 그리 했다고 하기도 합니다만 이 사건에 누이인 살로메와 장모인 알렉산드라가 깊숙이 개입을 했던 것을 보건데 역시 정권찬탈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특히나 마리암을 처형한 직후 헤롯의 정신상태를 빌미로 그를 몰아내고 스스로 여왕이 되려고 했었던 장모 알렉산드라의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와 같은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헤롯은 자신의 권좌를 넘보는 장모 알렉산드라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여섯 번의 결혼과 줄줄이 낳은 자식들이 있었지만 자나 깨나 권력에 대한 집착적 불안증은 아내 마리암 뿐 아니라 자기가 낳은 두 아들까지도 자기 손으로 처형을 해 버리고 기원전 4년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역사가 요세프스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예수의 출생 시기를 현재 사용하는 서력기원으로 AD 1년이 아니라 BC 4년 이전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은 죽으면 끝장납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하고 이명박은 죽으면 끝나지만 살아있는 국민들은 그 쇠고기를 먹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헤롯이 살았을 때는 똑똑한 자식들이 자신의 정적으로 보였겠지만 사실은 그 자식들이 후계자가 될 만한 인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뇌 용량이 2 MB 밖에 되지 못했던 헤롯의 두뇌는 그 사실을 깨닫기에 충분하지 못 했었습니다. 그 결과 똑똑한 녀석들은 다 죽여 버리고 결국 죽여 없애야 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해 살려두었던 멍청한 녀석들이 헤롯이 죽은 후 헤롯의 자리를 나누어 갖습니다. 그것도 세 등분하여…

정권에 야합한 목사놈들(앗, 오타? 아닙니다)과 유대교를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로제에“ (로마, 제사장, 에돔) 상위 1%만을 위해 권력을 휘둘렀던 헤롯은 그렇게 죽고 극심한 양극화 현상 속에서 지칠 대로 지친 비정규노동자들과 극빈층의 탄식 그리고 구겨지고 찢겨진 민족의 자존심에 대한 원성이 한 켜 한 켜 명박산성을 향해 쌓여가고 있던 바로 그 현장 한 복판에서 예수가 태어나고 자라났던 것이었습니다.

헤롯이야기, gift card를 지갑 가득 담고 뿌듯한 맘으로 시작했었지만 그만 허탈한 가슴으로 마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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