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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 2019

<2019 사순절 이야기 - 서른 셋>

오후에 중학교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학교에 가서 6학년 여자아이 헤일리(본명은 아닙니다)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온 것을 보고 ‘이제는 됐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습니다.

이틀 전 중학교 아이들을 모두 내려 주고 좌석 확인을 하는데 한 곳에서 붉은 색 액체가 묻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과일 주스 같은 것을 쏟은 것이 아닌가 했지만 가까이 보니 피였습니다. 문뜩 그 자리에 앉아있었던 헤일리가 떠올랐습니다. 뭔가 불편한 듯한 표정으로 꼼짝 하지 않고 앉아 있었는데 아마도 달거리를 처음 시작 했는가 봅니다.

초등학교 꼬맹이들을 태우기 전에 급하게 의자를 닦아냈고, 다음날 수잔에게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첫날이라 그랬던가 봐, 오늘은 괜찮겠지 뭐”라고 했지만 어제는 아예 회색 바지 아래쪽에 붉은 것이 묻어있기까지 했었습니다.

아이들이 버스에 다 탄 후에 교장 드니스를 불러 이야기 했습니다.

“헤일리 말이야, 어제 앉았던 자리에 피가 묻어 있었거든, 그런데 오늘 보니 바지 아래쪽에 피가 보여. 달거리를 시작 했나봐. 알고 있었어?”

“그랬어? 몰랐는데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어?”

“일단 버스를 타고 있으니 내리라고 하면 다른 아이들이 이상하게 생각 할 거야. 헤일리가 창피 당할 수도 있잖아. 그러니 오늘은 아무 말하지 않고 집에 데려다 줄게. 좌석은 꼬맹이들 타기 전에 내가 얼른 닦으면 되니까”

“그래, 헤일리가 부끄러워하면 안되니까. 오늘은 그냥 가게하고 내일 학교 간호사에게 말해서 헤일리를 만나 보라고 할게”

“그렇게 하자, 헤일리가 우선 이니까…”

말을 끝내고 돌아서 가던 드니스 교장이 서너 걸음 가더니 돌아서서 내게 말 했습니다.

“Chang, Thank you so much, I truly appreciate it.”

오늘 검은색 바지를 입고 버스에서 내려 불편한 걸음으로 집으로 걸어가는 헤일리의 뒷 모습을 보면서 ‘녀석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 내게 묻기도 했습니다.

“장호준, 너는 네게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했던 적이 언제였었냐?”

우리는 ‘시작’이기보다는 ‘연속’이라는 삶속에 살고 있습니다.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라는 불편한 걸음 보다는 기존의 삶에 ‘안주’하려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불편한 ‘새로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리 하지 않는다면 이미 파놓은 한 웅덩이 속에 우리가 다같이 빠져 묻혀버리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화, 비록 불편할 수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가야하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2019 사순절,
오늘 나는 무엇을 ‘시작’하고 있는지, 아니 ‘시작’하고 있는 무엇이 있기는 한지 내 삶을 두리번 거리며 찾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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