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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 2018

2018 사순절 이야기 – 서른일곱 번째 편지

잠언 27:17
<쇠는 쇠에 대고 갈아야 날이 서고 사람은 이웃과 비비대며 살아야 다듬어 진다>

오늘 하루 비비댄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새벽 5시 59분에 스쿨 버스를 타는 고등학생 로간에서 부터 오후 4시 17분에 스쿨 버스에서 내리는 초등학생 오누이 엠마와 커너까지 그리고 사무실 직원 수젼과 월남전 참전군인 짐, 디젤 엔진 정비사 데이브, 새벽 마다 눈도 채 뜨지 않은 아이 셋을 데리고 일하러 나오는 레베카, 흘러내린 바지를 치켜 올리며 버스 마다 기름을 넣는 제프, 지난 겨울 남편과 헤어진 니콜 그런가 하면 스쿨 버스만 타면 잠을 자는 코비, 잠시도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는 카이야, 늘 투덜대는 매디, 오늘 하루 만난 사람들의 수를 세어보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늘 혼자 머리를 자르다 보니 가위가 잘 들지 않으면 애를 먹습니다. 숫돌에 날을 세워 사용하는데 새로 산 숫돌이 영 신통치가 않습니다. 급한 마음에 굵은 돌 쪽으로 갈았더니 그나마 남아있던 각 마저 다 뭉개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고운 숫돌로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갈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결국 가위를 새로 사고 말았습니다.

쇠를 쇠에 대고 갈면 당장은 날이 서는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은 둘 다 망가지고 맙니다. 쇠의 날을 세우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것으로 갈아야 합니다. 그래야 날이 예리하게 서고 오래 갑니다. 시간은 많이 걸리더라도 말입니다.

사람 역시 많은 사람들과 비비대며 살아야 삶이 다듬어지고 지혜가 예리해 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삶이 다듬어지기 위해서는 잘 다듬어진 사람과 비비대야 합니다. 날이 비틀어진 사람들과 비비대며 사는 것은 오히려 삶을 망가뜨리고 지혜를 무디게 만들고 맙니다.

그러하기에 <쇠는 쇠에 대고 갈아야 날이 선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같은 것들끼리 비비대면 결국 둘 다 깨져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이웃과 비비대며 살아야 다듬어 진다>는 말은 비비대야 할 대상이 올바르다는 전제가 있을 때 맞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삶이 다듬어지고 지혜가 날카롭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비비댈 올바른 대상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왜 꼭 삶이 자로 잰 듯 줄맞춰 다듬어져야 하고 냉철하게 날카로운 지혜로 무장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 해 봅니다.

그저 조금 무딘 듯, 조금 흐트러진 듯, 아이들과 깔깔대며 웃고, 사람들과 어울려 춤추며, 술 한 잔에 노래 흥얼거리며 살았던, 아픈 사람과 같이 아파하고,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 엉엉 울며 살았던 예수처럼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인지…

고난주간 세 번째 날, 오늘은 무엇을 위해 울까 하고 세상을 둘러봅니다.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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