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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 2018

2018 사순절 이야기 – 스물일곱 번째 편지

잠언 18:14
<사람이 정신으로 병을 이길 수 있다지만, 그 정신이 꺾인다면, 누가 그를 일으킬 수 있겠느냐?>

마크 트웨인 (Mark Twain, Nov. 30, 1835 – Apr. 21 1910)은 “I wonder if God created man because He was disappointed with the monkey.” (신이 원숭이에게 실망해서 사람을 창조했다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라고 말 했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원숭이 보다는 낫다는 것은 “I wonder if…”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과연 사람에게 ‘의심’이 없다면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그 현상에 순응하고 적응만 하며 산다는 것이 과연 사람다운 삶인가 하는 것입니다.

‘불’을 의심한 최초의 인류가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었던 것처럼, ‘돌’을 의심 한 사람들이 도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식민지사관’을 의심한 사람들이 ‘민족사관’을 찾아 낼 수 있었으며, 이승만의 건국절을 의심한 사람들이 1919년 임시정부수립 건국절을 되찾아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전두환의 ‘광주 사태’를 의심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5.18 민주화 운동’을 되살릴 수 있었던 것처럼 ‘박근혜의 일곱 시간’을 의심했기에 탄핵을 이루어 냈으며, ‘다스’를 의심한 결과 이명박을 소환 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믿음, ‘기독교’의 믿음 역시 ‘의심’이 기초가 되어야 믿음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듯이, 삶의 모든 부분에서의 믿음이 그저 보이는 대로, 말하는 대로, 가르쳐 주는 대로 따르기만 하는 것이라면 이는 진정한 신뢰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모든 믿음은 의심에서 시작해야 하며 그 ‘의심’이 곧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정신, 인간이 원숭이 보다 나은 점이라 생각합니다.

“이거 정말 맞아?”라고 물어 봐야 합니다.
의심의 정신이 꺾인다면, 세상은 병들어 쓰러져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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