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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 2018

2018 사순절 이야기 – 스물아홉 번째 편지

잠언 19:29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

오후에 꼬맹이들을 집에 데려다 주려고 학교에 갔더니 핸드릭스 선생이 유치원에 다니는 제이스의 ‘Discipline Note’를 가지고와 내게 보여주면서 “뭔지 알지?”하고 말합니다.

지난 금요일 꼬맹이들을 데려다 주는데 에미리가 “챙, 제이스가 바지를 벗었어!”라고 말합니다. 가끔 스쿨 버스 안에서 꼬맹이들이 그런 행동을 하기는 합니다. 바지를 내리서 자기 꼬추를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 딴에는 자랑이라고 생각 하는 지도 모르겠지만 학교의 입장에서는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버스를 세우고 제이스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Did you pull your pants down?”
“No”
제이스가 ‘No’라고 대답을 하지만 그 모습이 곧 ‘Yes’입니다.

곁에 있던 줄리에게 물었습니다.
“Did he pull his pants down?
“어, 제이스가 바지를 내리고 penis를 보여 줬어”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에 오피서인 수잔느에게 “지난 금요일에 제이스가 버스 안에서 바지를 내리고 pinky(pinky finger – 새끼 손가락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꼬맹이들의 꼬추를 재미있게 이렇게 부릅니다)를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 주었다고 하는데, 나는 굳이 학교에 리포트 할 생각은 없지만 혹시라도 아이들이 부모에게 이야기 했으면, 그래서 부모들이 학교에 컴플레인을 했으면 네가 알고 있어야 할 테니까 말하는 거야. 그러니 알고 있으라고”하며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부모들이 학교에 컴플레인을 했고 그에 따라 제이스는 ‘Discipline Note’를 받은 것입니다. 뭐 그래봐야 정해진 기간 동안 스쿨 버스에서 정해진 좌석에 앉도록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벌칙을 통해서 자신이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 하게 되는지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핸드릭스 선생이 ‘Discipline Note’를 가지고 와서는 “어디에 앉으라고 할까?” 하고 내게 물어 봅니다. “여기 맨 앞자리, 내 뒤에 앉혀야지 뭐”라고 대답을 해 주자 제이스를 불러 맨 앞자리에 앉히면서 “이게 네가 한 행동에 대한 consequence 야” 라고 말해 줍니다.

유치원 아이가 ‘consequence’라는 단어를 알기는 하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제이스에게 자기가 한 행동이 이런 불편한 결과를 초래 한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목적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릅니다. 그러하기에 거만한 짓을 하면 심판이 따를 것이고 어리석은 짓을 하면 채찍이 따른 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착한 일을 하면 상을 받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은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아도 되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이러한 지극히 보편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역사를 거쳐 왔었으며 그 속에서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되는 결과를 보았음에도 또다시 박근혜가 구속되었고 이제 이명박의 구속영장이 청구 되었습니다.

유치원 꼬맹이 제이스도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어떤 ‘consequence’가 따른다는 것을 배우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인데, 어찌 대통령이라는 자들이 저들이 저지른 부정한 행위에 어떤 ‘consequence’가 따른 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이제라도 다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구속되는 불행한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명박은 그가 저지른 불의한 행동에 대한 ‘consequence’를 분명하고 철저하게 지불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을 무시하는 거만한 자에게는 심판이라는 그리고 역사를 외면하는 어리석은 자에게는 채찍이라는 ‘consequence’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리 할 때 다시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불의한 짓들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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