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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 2018

2018 사순절 이야기 – 서른한 번째 편지

잠언 21:9, 1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낫다. 바가지 긁으며 괴롭히는 아내와 사는 것보다 광야에 나가 사는 것이 낫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해서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성령에 의해 쓰인 거룩한 말씀이라는 ‘성서무오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성서에는 수 없이 많은 오류들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틀린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문자적 의미에서 ‘성서무오설’은 그저 무지한 신앙에 근거한 웃기는 소리일 뿐입니다.

성서에 오류가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한 가지는 성서는 사람이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실수를 한다는 것이고, 그 보다 더 핵심적인 오류의 원인은 성서는 성서가 쓰인 시대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으로 해서 현재라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오류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시대에 쓰인 말들이 우주를 논하는 시대에서는 오류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성서는 오늘이라는 상황에서 재해석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낫다>는 말은 <여인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남자와 함께 강남 부촌 아파트에 사는 것 보다 달동네에서 사는 것이 낫다>라는 말로, 또는 <바가지 긁으며 괴롭히는 아내와 사는 것보다 광야에 나가 사는 것이 낫다>는 말은 <강제적 부부관계를 요구하며 괴롭히는 남편과 사는 것 보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것이 낫다>는 말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쓰인 성서를 ‘양성 존중 사회’에 근거해 다시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서를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그리고 평등과 평화의 뜻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간 모습으로 해석한다면, 여인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남자는 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하며, 아내를 괴롭히는 남편은 광야로 내 쫓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모든 사람이 어떤 차별이나 제약 없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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