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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 2018

2018 사순절 이야기 – 서른세 번째 편지

잠언 23:13-14
<아이에게 매 대기를 꺼리지 마라. 매질한다고 죽지는 않는다. 아이에게 매를 대는 것이 그를 죽을 자리에서 건지는 일이다>

‘정신봉’, ‘사랑의매’ 이런 글자가 쓰인 막대기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없어졌겠지만 예전에 선생들이 출석부 사이에 끼워 들고 다니던 것입니다. ‘봉’ 이고 ‘매’ 인데 ‘정신’과 ‘사랑’을 대충 꾸겨 넣어서 ‘정신’을 차리게 하는 ‘봉’이 되었고 ‘사랑’을 표현하는 ‘매’가 되었던 것입니다. 말은 복잡하지만 간단히 학생들을 때리는 ‘몽둥이’이라는 것입니다.

떠든다고, 늦었다고, 말 안 듣는 다고, 숙제 안 해왔다고, 시험 틀렸다고 학생들을 때리는데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몽둥이일 뿐입니다. 심지어는 기분 나쁘다고 “너, 나와!”하고 때리는데도 어김없이 사용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이라고 했고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맞고 자랐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이 사회의 ‘사랑’과 ‘정신’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효도법’, ‘불효소송’등과 같은 단어들을 생산하게 하는 세대들이 매를 맞고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잘과 잘못을 가르치지 않은 책임은 부모에게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방법이 무엇이냐에 따라 아이들은 ‘잘’을 ‘잘못’으로 그리고 ‘잘못’을 ‘잘’로 새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입으로 ‘정직’을 말하며 삶으로 ‘부정’을 저지르는 이명박을 보고 자란 자식들에게 있어서는 ‘부정’이 곧 ‘정직’인 것으로 새겨지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옳고 그른 것을 알려줘야 하는 것은 부모들의 책무입니다. 그럼에도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이라는 과대 또는 위장된 포장지에 싸인 채 저질러지는 부모의 옳음과 그름 사이의 기준 없는 줄타기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사랑’과 ‘정신’을 ‘미움’과 ‘혼란’으로 몰아넣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매 대기를 꺼리지 마라. 아니다. 아이에게 매를 대지 마라>
<매질한다고 죽지는 않는다. 아니다. 몸은 죽지 않아도 마음은 죽는다>
<그를 죽을 자리에서 건지는 일이다. 아니다. 그를 죽을 자리에서 건져내는 것은 사랑이다>

아이들을 매로 때리지 마십시오. 그 매가 아이들을 때린 세상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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