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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 2017

2017 사순절이야기(22) – 악을 최소화하는 방법, 민주주의

안녕하세요? 저는 2010년 부터 15년까지 스토어즈 교회와 함께 하다 지금은 미시간에 와 있는 최원석 이라고 합니다. 사순절에 가장 적합한 주제는 아닌거 같지만 참 기독교인의 소명 중 하나는 예수님이 남겨주신 가르침을 현세의 삶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이냐는 점에서 조금은 맞닿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몇자 적어봅니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유시민 씨의 창비 ‘라디오 책다방’ 팟캐스트 출연분과 ‘국가란 무엇인가’ (돌베개) 의 내용을 바탕으로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들을 약간 덫붙혔습니다.

창비 ‘라디오 책다방’ 62회 유시민, ‘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 26분 45초

오늘 한국 사회는 헌정 사상 최초로 헌법을 위배한 통치자를 민주적 절차를 통해 탄핵했다는 성취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취는 다만 시작에 불과하지 않은가 싶은 마음입니다. 위의 팟캐스트에서 유시민 씨는 카(Carr)가 역사를 도덕적 차원에서만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한 부분을 전두환 정권에 대한 평가에 적용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깊이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박근혜와 그 정권을 단순히 무능하고 부폐한 나쁜놈들이라고만 얘기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어떻게 그들은 정권을 잡았고 다수의 국민들이 왜 그들을 지지했는지 사회적 구조와 배경, 문화적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xxx를 xxx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역사라는 것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이 앞으로는 xxx가 덜 나오게 하는 것이라 한다면, 단지 개인적인 수준에서 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새로운 정권의 탄생이 얼마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과연 민주주의와 선거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봅니다. 다음은 좀 길지만 유시민 씨의 ‘국가란 무엇인가’ (돌베개)의 한 대목입니다.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이 질문이 정치철학을 오도했다고 포퍼는 플라톤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이를 플라톤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중요한 질문이며 좋은 질문이다. 문제는 이 질문이 너무나 오래 정치철학의 세계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했다는 데 있다. 그 책임을 플라톤에게 묻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카를 포퍼는 플라톤이 정치문제를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라는 형태로 나타냄으로써 정치철학의 지속적 혼란을 야기했다고 비판했다. 물론 그렇게 비판할 수는 있다.

플라톤이 던진 질문에 대해서는 ‘가장 선한 자’, ‘최고의 현자’, ‘타고난 통치자’, ‘지배기술에 통달한 자’ 또는 ‘일반의지’가 통치해야 한다는 식의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모두는 논리적으로는 옳지만 아무 쓸모없는 대답이다. 누가 ‘최악의 인물’, ‘가장 어리석은 바보’, ‘타고난 노예’의 지배를 옹호하겠는가? 이 질문을 정치철학의 근본문제로 가정함으로써 플라톤은 본질을 간과해버렸다.

누가 통치해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도, 정치지배자들이 충분히 선하거나 현명하지 않으며,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을 만큼 선하고 현명한 정부를 갖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나쁜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을 탐구해서는 안 되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질문의 형식이 달라진다. “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들이 너무 심한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어떻게 정치제도를 조직할 수 있는가?” 이것이 정치철학이 다루어야 할 올바른 질문이다.

이것이 정치철학의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만약 최선의 인물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도록 보장하는 확실한 방법이 없다면,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질문은 “정치제도를 어떻게 조직해야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더라도 악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느냐”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포퍼는 이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해법으로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가 국가를 잘 통치할 훌륭하고 유능한 사람과 정당을 국민이 선택하는 제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권자인 국민 모두가 동등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보통선거제도가 그런 사람과 정당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인 제도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이론적으로도 그러려니와 세계 각국의 경험을 보아도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을 맡긴 예가 적지 않다. ~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악하거나 무능한 또는 둘 다인 사람을 국민이 지도자로 선출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은 가장 훌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사악하거나 거짓말을 잘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닌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이며 강점이다. ~ 따라서 민주주의는 국가가 선을 행하는 것도 동시에 방해한다. 설혹 플라톤이 왕으로 세우려 했던 현자가 대통령이 된다 할지라도, 그는 자기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국회와 헌번재판소, 언론과 정당 등 다른 권력기관들을 사악한 인물들이 장악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것은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마음대로 악을 저리르지 못하게 하는 대가로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부작용이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이러한 강점과 약점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민주주의 그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민주주의가 최선의 인물을 지도자로 뽑아 최대의 선을 행하게 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경우, 민주주의는 자칫 ‘다시 실망하기 위해서 매번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비극적 이벤트’로 전락할지 모른다.

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열망들이 후보자들에게 투사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새로운 변혁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지금의 순간에는 수많은 부조리한 사회의 모습들에서 비롯된 절망이 개혁과 혁신에 대한 거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변환되는 듯 합니다. 그 기대와 희망이 우리가 직시하지 않고 있었던 이면의 민주주의, 악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써의 민주주의에 걸려 실망과 냉소로 차갑게 변질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창비 ‘라디오 책다방’ 62회 유시민, ‘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 45분 24초

“결국 사람들이 무엇을 소망하는가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는 데서 얼마나 지혜로운 방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진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한테 없는 것이 미래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어떤 것이 생긴다면 그것은 우리안에 이미 있는 것이다.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소망만이 미래가 되는 것이지 지금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미래에 오지 않는다.”

끝으로 다시 유시민 씨의 ‘라디오 책다방’ 팟캐스트 출연분으로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방영 시기가 2014년 7월로 참 세월호 직후 참 절망적이었던 상황에 이 팟캐스트가 제게 큰 위안과 숙제를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요약해 보면 결국 미래는 저절로 혹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안에 있는 무엇인가로 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라고 그는 지적합니다. 오늘 한국 사회가 과거 참으로 암울했던 시기보다 좀 더 나은 모습은 그 시대를 살아가던 이들의 열망과 고민과 투쟁의 산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암울한 사회의 모습은 10년전 우리안에 있던 욕망과 준비되지 못했던 부족한 부분들의 산물일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역사의 반동이라는 상황을 겪으며 우리가 되돌아보고 좀 더 깊이 고민하는 부분들은 결국의 우리의 미래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오늘의 삶에서 수동적으로 미래를 기다리기 보다 적극적으로 미래의 씨앗들을 만들어 가야 할 거 같습니다.

1 comment

  1. 삯꾼의 프로필 사진
    삯꾼

    최교수님,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그곳 날씨는 어떤가요?
    이곳은 날씨가 날씨 제멋대로 입니다. ㅎㅎ

    이 글은 오늘 2017년 대선 정국에서 다시 새겨 봐야 할 듯 하군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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