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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 2013

2013 사순절 이야기 -38- 하늘이시여

커네티컷에 거의 매 주말마다 스톰이 찾아들었네요.
먹구름 가득한 하늘은 비를 뿌리고나면 맑게 개일줄 알았는데
푸른 하늘에 대한 희망의 주기는 1주일도 채 못가니 봄이 오는 소리는 아직 아련하네요.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치다 제 기억속의 시 한편으로 때워볼까 합니다.

하늘 (박노해)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높은 사람, 힘있는 사람, 돈많은 사람은
모두 하늘처럼 뵌다
아니,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시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代代로 바닥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것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어린 시절 가슴 한켠을 아리게 만들었던 박노해 시인의 싯귀를 떠올렸습니다.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고픈 소망을 담은.

그러고 보면, 내 기억속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먹구름 하늘의 기억이 있네요.
교회에서 통성으로 울부짖기도 하고, 영광을 바치고 또 간절한 내 소원을 빌던, 우러러 볼 수만 있을 뿐 손을 뻗어 닿을 수도, 만질 수도, 혹은 내 품에 당겨 간직할 수도 없는 그저 요원하기만 한 하늘님이 아니라, 천사의 속삭임으로 다가왔다 천둥처럼 무시무시한 울림으로 나의 학위를 쥐락펴락하는 지도교수의 한마디 한마디가 하늘이기도 하고, 가끔씩 고지서 폭탄세례를 던져주시며 재계약 서류를 내미는 홀링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전횡 또한 힘없는(?) 입주자한테는 작은 하늘의 몸짓이기도 했으니까요.

열심히 공부해서 학위 따고 나서 직장 구하고 나면 나에게 하늘이 다시 파랗게 열릴까 기대도 해보긴 하는데, 그나마도 바램의 여력이 없는 수많은 바닥 인생들에게 검은 하늘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 아닐까 싶네요. 쉽게 바꿀 수 있다면 하늘이라 명명하지는 않았을겁니다. 대다수가, 바뀌지 않는 하늘 아래 일상을 바꾸겠다는 희망 고문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는지…

가끔은, 교회에서 기도 열심히 드려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얘기들을 듣곤 합니다. 자식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였다고, 안팔리던 집이 드디어 잘 팔려서 돈문제가 해결 되었다고, 혹은, 원하는 직장을 얻게되어 백수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고.

진짜 하나님이 원하는 답의 진위 여부는 알지 못한채
달콤한 응답에 대한 욕구만이 남아 우리를 잘못 인도하고 있는건 아닌지.

국민을 하늘같이 섬겨야할 나랏님이 어느새 국민이 섬겨야할 하늘로 변해있는, 이 왜곡된 하늘아래 땅에서, 내가 섬기고 귀기울여야할 하늘을 찾는 일이야말로 모든 이의 푸른 하늘을 여는 시작이 아닐런지. 어쩌면 먹구름에 잠시 가려진 파란 하늘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한채, 그새 시력과 청력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세상에 하늘이 참 많습니다. 그 하늘아래 사람도 정말 많습니다.

싯귀절 속에서처럼, 흔들리더라도 누군가에게 작지만 파란 하늘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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