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월 07 2013

2013 사순절 이야기-20-대구에 비와요~

눈 뜨자마자 어둑어둑하니 비냄새가 나고, 일어나 정말 창문에 빗물이 흐르고 있음을 확인하면 행복해집니다. 오늘이 마침 그 날씨네요…

할머니의 시골집 처마 밑에 앉아서 보면, 비를 피하려고 뒤뚱거리며 달리는 닭들이나 비 설걷이 하시느라 분주한 할머니의 뒷모습이나 참 닮았었지요.
어른들이 아무리 바빠도 어린이는 할 일이 없는 아늑함까지 겹쳐 처마 밑의 빗물 웅덩이에 생기는 수많은 동그라미를 보며 행복하다~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그때 행복이란 단어를 지금도 유난히 똑똑한 제가 알았을 리 만무하지만 돌이켜 제목을 붙이자니 그 단어가 딱입니다^^

마흔 중반의 제게 그때 생겼다 사라진 동그라미들과 증발해 버린 빗물, 돌아가신 할머니는 이제 너무 그리운 과거라 괜히 의미를 붙여보려 합니다.
‘이제까지 내 주위에 생겼다 사라졌던 동그라미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생기고 사라지는 동그라미가 익숙해져서 옮겨다니는 것도 너무 당연했고, 지워진 동그라미가 그리워 멈춰 돌아본 적도 없었던 것 같은 내 삶에 잠시 묵념…

비갠 하늘에 쌍무지개가 쨍~하고 뜨는, 저 멀리 땅값 좀 나갈 것 같은 멋진 동산보다도 이제는 흔하디 흔한 진흙탕 빗물의 제 동그라미들을 돌아보고 좀 챙겨야될 듯 합니다.

넘 염치없이 당연했던 그 동그라미들을요.
이 가족들, 저 가족들, 이 친구들, 저 친구들, 동료들, 이웃들의 동그라미들이 겹쳐 퍼지면서 제게 전해지는 이 감동이 없었다면 온몸이 쑤시는 중년이 된 제게 인생은 더 많이 무거웠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5년 전 미국에서 저희들이 만든 스토어스 교회라는 동그라미가 또 한 밤중에 저를 말도 안되는 그리움의 stream of consciousness를 휘젓게 하는 것처럼요 ㅎㅎ

조용한 물결이 감동이 되고 감사가 되고 다른 동그라미로 계속 퍼져나갈 수 있는 시간들을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혹 과하다, 말도 안된다 싶으시면 비가 와서 , 밤이어서 그러려니~ 그래도 안되면 돌을 던져 주십시오, 또 동그라미나 만들게 ㅋㅋ

편한 밤 되세요~^^

1 ping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