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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 2013

2013 사순절 이야기 – 감싸안기 vs 원칙적용

작년에 전교에서 제일 힘들다는 반을 맡아 지지고 볶고 달래고 소리 지르고 웃고 울며 지내다 정이 듬뿍 든 아이들을 고3으로 올려 보내고 휴~~ 한숨 돌리나 했더니 그리도 안 하고 싶던 고3담임이 되었습니다. 작년 고생했다며 제게 맡긴 반은 이과 혼성반, 처음에는 지각생 수가 너무 적고 내라는 것 제 때 꼬박꼬박 내는 아이들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이러니까 훨씬 수월하구나 했었죠. 그런데 지난 주 저희 반 학생들 중 한 명이 이번에는 ‘교권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을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열어 보면 바늘구멍만한 속을 지닌, 능력도 부족하고 나이만 먹었지 맘도 여려터지기만 한 제게 왜 이리 시련이 계속되는지… 이런 과정들 속에 요즘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현실이 된 점점 더 엄격해진 벌점제도의 문제점과 불가피성에 대해 여러 번 고민해야 했습니다.

고교선택제가 도입된 후 고입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소위 입시명문이라는 인근 사립고나 단성고(남고, 여고)를 선호하여 그런 학교로 몰리고 일반 공립 남녀공학은 가장 기피하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특히 생활지도가 엄격하지 않으면 인근의 소위 ‘노는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서 공립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1지망으로 씁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강남 8학군에 있다고 해도 이런 상황을 벗어나진 못했지요. ‘노는 학생들’이 지원하지 않는 학교,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학생들이 싫어하진 않는 학교가 되기 위하여 많은 고등학교들이 생활지도를 강화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인권을 침범해서는 안 되고 체벌도 절대 해서는 안 되니까 거의 모든 학교들이 더 엄격한 ‘벌점제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근무교의 벌점항목과 벌점들 중 일부를 예를 들면

치마길이나 바지통을 임의로 줄이면 -4점, 수업 중 전자기기 조작행위 -3점, 수업 중 음식물 취식 -2점, 청소 등 학급활동에 태만한 행위 -2점, 화장, 귀걸이, 피어싱, 매니큐어, 두발 등 용의복장규정 위반 -2점, 정당한 벌점 부여를 고의적으로 방해하거나 불응하는 경우 -6점, 흡연 1회 사회봉사, 2회 2주 정학(출석정지), 3회 퇴학처분 …

상점 3점을 받으면 벌점 1점이 감해지긴 하지만 1학년부터 졸업 때까지 벌점이 쌓이면 금방 60점(정학) 75점(퇴학)이 됩니다. 작년 제가 담임했던 아이들 중 5명이 출석정지를 당했고 1명은 퇴학, 3명은 퇴학처분으로 거의 갈 뻔하다 단 한 번의 구제 기회를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 어머니와 제가 읍소하고 가슴 치며 속상해 했던 적이 참 많았지요. 이 아이들은 모두 제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학교는 우리같은 애들이 얼른 사라져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이 아이들이 우리 학교를 나가면 어디로 갈까요? 다른 지역 학교로 전학을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드물지만 자퇴를 하기도 합니다. 교사들끼리 자조적으로 ‘공 넘기기’라고 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런 학생들이 모두 일진에 정~말 나쁜 아이들이 아니고(그런 경우는 다행히 아직 극히 드뭅니다.) 그저 담배를 너무 일찍 배운 아이들, 더 멋있는 줄 알고 바지통을 줄여 입고, 떠들며 놀기 좋아하는, 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지각이 잦은, 극히 평범하다고 볼 수 있는 아이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선도위원회’에 참석하면서 제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이 아이들을 보듬어 안아주는 것이 옳다.)이 일반적인 교사들의 입장이 아니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학교가 더 좋아지게 된 건(담배연기가 없어지고, 노는 아이들이 적어지고, 선생님들께 반항하는 아이들 수가 준 것 등) 모두 엄격한 벌점 적용과 실행 덕분이라고 하시더군요. 저처럼 생각하는 건 지극히 감상적이고 무책임한 태도라고… 저 자신도 생활지도부의 엄격한 관리 덕을 보고 있는 거니 너무나 감사하고 있어야 한다고…

지금도 전 딜레마 속에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교사의 행동은 어떠해야 하는지, 나는 지금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어야 하는지…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주려 노력하는, 적어도 큰 상처를 주진 않는 교사’이기만 한 것으로는 너무 많이 부족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네요.

지난 일요일 성당 미사에 갔는데 신부님께서 많이 들어보던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 모두 각자가 자신만의 십자가를 지고 있다고. 내가 진 십자가가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보고 내 곁에 있는 이들이 지고 있는 십자가도 볼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서로에게 어깨 기대어 서로의 십자가를 함께 나누어질 수 있게 되면 참 좋겠습니다. 학년 초 늘 피곤에 절어서 집에 들어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불량 엄마, 불량 아내가 참 욕심도 많다 싶기도 하지만요^^

그립고 그리운 코네티컷 가족들. 따스한 봄이 목전으로 다가왔네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김춘아(준우, 준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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