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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 2013

2013 사순절 이야기-33-만남

만남
세상을 살다 보면 수 없는 만남을 경험한다. 어떤 만남은 일회적이고, 어떤 만남은 기간이 길고 빈도도 촉촉하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긴 만남도 있다.
기억하는 만남 중에 몇몇은 의미 있는 것으로, 또 다른 몇몇은 다시는 있지 말아야 할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의 만남을 기억하지도 평가하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잊혀진 만남이다. 아마 인생에서 가장 많은 빈도는 이 잊혀진 만남일 것이다. 나에도 잊혀질 수 없는 몇몇의 만남이 있다. 그 만남을 여기에 모두 적을 수는 없지만, 이런 자리를 빌어 남기고 싶은 만남이 있다.

긴 방황 끝에 대학에 입학했던 1970년대 후반 어느 날 우연히 교수연구실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그 연구실의 주인을 만났다. 그 분은 누구냐고 묻더니 별안간 선문답에서나 나올법한 질문을 하셨다. “선생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고 하면서 그 답지로 “법률가, 부모, 농부, 예술가”를 제시하였다. 나는 지체 없이 농부라고 대답하였다. 왜냐고 묻기 전에 나는 농부가 곡식을 키우는 마음이 선생이 제자를 키우는 행위와 가장 유사할 것이라는 사족을 덧붙였다. 나는 지금도 빙그레 웃던 그 때의 그 분을 기억한다.

그 날 이후 나는 그 분의 연구실에서 10여년을 보냈다. 때로는 그 당시 사회적 상황에 공분하면서 때로는 학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했다. 밤늦게까지 그 분의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꾸벅꾸벅 졸기도 했지만, 늘 깨우지도 않고 말씀을 이어나갔다. 그 다음 날 다시 얘기를 들으면 어제 얘기와는 다른 좀더 나간 아이디어를 듣게 되는데 이 분이 언제 잠을 주무시나 의문이 들기도 했다.
토론이나 이야기를 끝내면 그 날은 주로 술을 마시는 날이었다. 술자리는 다시 조금 전에 했던 이야기의 후속 편을 펼쳐 놓으셨다. 늘 술값은 그 분 차지였다. 우리는 여건도 되지 못했지만 그런 얘기를 꺼내면 혼을 맞곤 했다. 그 때마다 정년을 하시면 돌아가실 때까지 모셔야지 하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위로했다.

지금도 나는 종교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을 갖고 있지만 그 분은 갈등이 생길 때마다 성경구절을 인용하곤 했다. 성경이 읽히는 이유가 자기가 보기에는 갈등을 해결하는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수 많은 관계가 존재하고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으로 피하기 어려운 갈등의 관계가 등장한다. 그러한 갈등 상황에서 늘 예수는 피해자 없는 갈등의 해결책을 내놓는다는 것이 그 분의 지론이다. 피해자 없는 갈등해결은 오늘 날로 말하면 승승(win-win)의 해결책이다. 서로 갈등하는 당사자들이 추구하는 상반되는 가치나 이익을 손상하지 않고 그 대립되는 것을 통합하여 온전히 그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방안을 찾는 것이 그 당시 우리의 학문적 관심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 10년 동안 나는 그 분에게서 누구보다도 정말 많이 얻었고, 그 은혜로 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1998년 4월 어느 날 병석에 누워계신 그 분은 자신의 연구문제를 정리하시면서 나에게 자기가 완쾌되면 같이 연구할 주제를 들려 주셨다. 그러면서 자신이 일어나지 못하면 이 연구문제를 이어서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나지막이 물으셨다. 온통 슬픔에 대답을 제대로 했는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달 24일 새벽 2시 그 분은 무엇이 그리 바쁘신지 총총 길을 떠났다. 환갑도 넘기지 못한 그 분의 생을 옆자리에서 지켜 보면서 무기력한 나를 탓해야 했다. 그 당시 어렸지만 이미 나는 소중한 사람들의 마지막을 여러 차례 보아왔지만, 그토록 오래도록 슬픔과 허무감에 빠진 적은 없었다. 그리고 벌써 15년이 흘렀다. 이제 그 당시 슬픔은 빈도에서는 줄었지만 아직도 가끔 느끼는 슬픔은 가슴을 저리게 한다. 더욱이 나는 그 분이 정년이 되면 모신다는 약속도, 연구문제를 이어서 해보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그것은 나를 더욱 아프게 짓누른다.

이제 나에게는 10여년이 남아 있다. 나는 이 기간 동안 나에게 남겨진 부채를 조금이나마 갚고 싶다. 지금은 신용불량자지만 어떻게든 신용을 회복하고 싶다. 내가 스토어스에 오는 것도 이러한 아픔에서 벗어나 신용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에 일환이다. 이러한 노력이 성공적인지 알 수 없으나 이번 스토어스의 방문에서 나는 의미 있는 만남이라는 기대하지 않던 소중한 것을 얻었다. 서로의 안위와 이웃의 행복에 관심을 가진 사람과의 만남은 언제나 인간을 신나게 한다. 이러한 신남을 계속 즐기고 싶고 더욱 풍요롭고 가치 있게 키워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내 주위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술을 마시는 나를 늘 걱정 어린 눈으로 지켜본다. 나는 늘 이들에게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라는 시구를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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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처가 글을 올리지 않아 제가 사과하는 의미를 포함하여 며칠 앞당겨 올리게 되었습니다.” 라는 사족과 함께 신건호 교수님께서 한 주 전에 보내 주셨습니다.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지 않고자’ 우리는 매주 일요일 신 교수님의 자리를 비워 놓고 에일을 마십니다.
    신나는 만남을 깨우쳐 주신 교수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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