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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2 2013

2013 사순절이야기 – 오래전 기억을 더듬고

안녕하세요 은재엄마입니다
저는 오늘 저와 남편의 과거 이야기를 쑥쓰럽지만 조금 해볼까합니다. 앞서 남편이 자신의 글에서 밝혔듯이 과거 남편의 이상형은 교회 다니는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회 다니기 싫어하는 여자였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은 이렇게 교회를 매주 다니고 있고 그러한 제 모습에 큰 만족을 느끼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저에겐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가요???

남편과 제가 첨 만났을 당시 저는 기독교 동아리를 다니고 있었지만 사실 그 때 동아리 활동이 너무 힘들고 벅차서 언제 그만둘까 기회만 보던 차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남자친구를 사귀는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어린 양에게 방해될 수 있다며 몇몇 동아리분들이 부정적이시길래 이때다 싶어 박차고 나왔더랬죠. 그후에도 남편은 자신이 평소 다니던 교회에 저를 데려가기도 했지만 저는 도저히 맘을 붙일 수가 없었어요. 동아리서도 그랬지만 주된 이유는 성경을 해석할때 너무 현대에 맞지 않게 절대적으로 해석하는 것들, 이를테면 지나친 선민의식이라던가 남녀역할에 대한 이분법적(?)인 잣대들 같은거였는데요. 목사님 설교를 들을때마다 의심하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면 맘이 편할 수가 없는 거죠. 하나님이 하늘에서 보고 계시다가 나에게만 벼락을 쏘실것만 같은 그 기분…느껴본 분 계시나요…암튼 저는 교회 다니는게 싫었고 남편은 자꾸 가자고 했고…그 문제로 무던히도 많이 싸웠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했죠. 니 이상형을 나에게 강요하지 마라, 교회다니는 여자가 그렇게 중요하면 그런 사람 만나라, 나는 그런 사람 아니다. 종교 문제가 참 예민한 문제인데 참 희한하게도 저희는 그렇게 싸우면서도 헤어지지 않았고 아직 어린 나이 탓인지 점점 더 그냥 연애에 몰두하다보니 교회 문제는 점점 더 잊혀져간거 갔습니다. 어느덧 남편도 다니던 교회에 발을 끊었더랬죠.

그러다가 남편은 대학 졸업 무렵에 캐나다와 스위스에 어학연수와 교환학생을 다녀왔는데 그 이후 이상형이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이상형이라기보다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었는데 바로 ‘ 외국에 살면서 아이들 손잡고 교회다니기’ 라더군요. 정말 기가 찼죠. 교회다니는 것도 모자라 외국에 나가 살아야 하쟈나요???  당시의 저는 외국은 커녕 제주도도 가본적 없었고 교육공무원이신 엄격한 부모님 탓에 학교 휴학하고 어학연수갈 생각은 꿈에도 못했을뿐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도 강했죠. 게다가 그래도 부모님 가까운 곳에 살면서 자주 뵈어야 하는게 당연한 도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런 저에게 외국생활에 교회다니기라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지 않고 자꾸 변하기를 바라는것 같아 많이 섭섭했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너의 소원을 들어 주지 않을 거다…연애를 지속하더라도 결혼은 다른 사람이랑 해야겠다…설령 결혼하더라도 네버 에버 니 맘대로안된다…이렇게 다짐했더랬습니다. 

지금 다시 돌이켜보니 이런 상황이었는데 저희는 어떻게 결혼한 것일까요… 참으로 희한합니다. 아마도 몇년뒤 결혼 얘기가 나올즈음엔, 서로 바쁜 직장생활에 쫓겨 가끔 만나는 짧은 시간을 의견충돌로 채우고 싶지 않아 예민한 화제를 꺼내지 않았고 자연스레 남편의 오래전 꿈은 마음속에 꿈으로만 남게되었던것 같습니다. 만약 결혼을 준비할 그 당시에도 남편이 교회니 외국이니 이런 얘기를 했다면 정말 저는 결혼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2006년에 결혼을 했으니까 횟수로 7년째인데 저는 지금 외국에 살고 매주 아이들과 함께 교회를 나갑니다. 저는 지금 남편의 오래전 그 꿈속의 여자입니다. 도대체 저에게 무슨일이 일어난 거죠???

남편은 이것이 바로 자신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X$*$%$>>….라고 으스댔지만, 몇주전 남편과 얘기를 나누다 정말 남편의 그 유치한 이상형이 이루어져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정말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매주 교회를 다니는 겉모습뿐 아니라 제 내면조차 많은 변화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와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처음 우리 교회에 왔던 2010년 12월의 어느날을 잊지 못합니다. 솔직히 목사님의 설교 내용은 자세히 기억이 안나지만, 찬양곡을 개사한 이상한 노래를 불렀다는 것과(진우네가 아파트에서 쫓겨났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돌아오는 차안에서 난생 처음 목사님의 설교에 의문과 반감을 가지지 않은 나 자신을 발견하고 흐뭇했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라면 하나님께서 내게만 벼락을 쏘시지는 않겠구나…^^…그 날 이후 2년여가 흐른 지금, 저는 설겆이를 하다가 이천마리 고등어와 오천개나 되는 떡을 흥얼거리고, 남편이 연주하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을 따라부르다가 너무 좋다며 앵콜을 요청합니다. 목사님의 기도에 함께 아멘을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이때문에 설교를 거의 듣지 못하는 요즘 가끔 교회 홈피에서 설교동영상을 플레이하는 저를 보고 깜짝 놀라곤 합니다. 이모든게 십여년전의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러기에 목사님과 교회식구분들께는 죄송한 마음이지만, 지금의 제 모습에 너무나도 만족을 느낍니다. 과거의 (그토록 교회를 싫어했던) 나에겐 초큼 미안할 정도로 현재의 (교회를 다니는)나는 행복합니다.

남편의 오래전 꿈을 어느덧 현실로 바꿔놓으신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속 오래된 소원 하나도 언젠가는 이루어주시길 바래봅니다.

-덧붙이는 말 1 . 제 손을 걱정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제 병원에서 물집을 제거한 후로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자판을 이만큼 두드릴 수 있을 정도니까요

-덧붙이는 말 2. 제 남편이 만약 어딘가에서 마누라에게 잡혀 산다고 하소연을 하거든 제발 모른척하여 주세요. 저, 남편의 ‘드림 DREAM’ 을 이루게 해주었는데 남편           좀  잡고 살아도 되지 않나요???

3 comments

  1. 정인기의 프로필 사진
    정인기

    글을 읽으면서 흐뭇한 웃음을 짓습니다.
    2004년 가을, 겨울에 또 그 이후에 스토어스 교회를 만들어가기로 한 것이 바로 이런 이유였다고 생각해 봅니다. 사람이 변화하는 그런 곳…

  2. 영서늬

    잡고 사는게 아니라 잡혀 사는 것이 행복해보이는 의장님입니다.
    그리고 행복한 의장님과 함께사는 예쁜마음가진 자연씨도 미소천사 은재도
    외유내강 단아도 모두~~모두~~~ 행복해 보입니다..

    피에쑤 :
    목사님,
    아무래도 의장님이 집 짓고, 잔디 가꾸고, 장작 패고, 수영장물 관리하면서
    살것 같아요….그쵸?^^

  3. 의 프로필 사진

    김재한씨의 야무진 꿈이 점점 향상되어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교회가는 여자에서
    외국에서 살면서 아이들 손잡고 교회가기
    이제 다음은 무엇으로 …
    혹시 미국에서 자기가 직접 집 짓고 … 뭐 이런 것은 아닐까 모르겠네요. ㅎㅎ

    에고 그래도 아직 많이 아플텐데… 물 닿지 않게 조심하세요.
    지난주 은재 아버지 모습을 보니 잡혀 사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빠져 살더구만요 뭐.ㅎㅎ

    아픈 손으로 이렇게 맛난 글 보여주시니 더욱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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