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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 2012

사순절 이야기 (3) – 무엇을 위한 기도?

며칠전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마치기 직전, “기도해 주세요”라는 멘트를 들었습니다. 제 느낌엔 “(원하는 직장에서 오퍼가 올 수 있게) 기도해 주세요”라고 들렸습니다.

지금도 크리스챤이라고 얘기하기 부끄러운 저에게, 어린시절 간절히 기도한 기억이 있습니다. 재수생의 신분으로 수능시험을 보던 당일 오전입니다. 누구에게 기도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무사히 실수하지 않고 시험을 잘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첫과목은 언어영역. 평소에 늘 시간이 부족해 많은 문제를 틀렸던 영역인데, 기도가 통했는지 제가 아는 유일한 소설(운수좋은날)이 첫 지문으로 등장했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모든 문제를 다 풀었는데, 시간이 20분이나 남았습니다. 정말 절대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꼼꼼히 답안지에 마킹을 해나갔고, 너무 꼼꼼했던 나머지 마지막 5문항을 마킹하기 직전 종이 울리고 말았습니다. 심각하게 긴장하기 시작했고, 시험감독관은 이미 제 옆에 있었습니다. 제가 문제를 다 풀었는데 마킹을 못해서 그러니, 조금만 봐달라고 얘기했고, 감독관은 부정행위라며 제 시험지를 뺏어갔습니다. 그러는 과정속에 실랑이가 있었고, 저는 급기야 뺨을 맞고, 발길질을 당하며, 보조감독관에게 양팔이 붙잡힌 채 끌려가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무척 노력했고, 그래도 평소보다는 많은 문제를 풀지 않았느냐라고 스스로에게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 보고 싶지 않은 그 시험감독관이 제가 있는 교실의 문을 열고 저를 찾았습니다. 혹시, ‘나를 도와주려고 하나?’ 잠시, 고민했습니다. 저를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더니 본인이 얼마나 시간에 민감한 사람인지 얘기합니다. 오전 7시 출발 수학여행에서 정각까지 나타나지 않은 두 학생을 수학여행에 불참시켰던 과거가 있었답니다. 그러더니, 저에게 “니 죄를 이제 알겠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건 또 뭔 소리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시험은 계속 되었고, 집중하기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어쨌든 시험은 끝이 났고, 수능 시험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본고사가 있던 시절이기에 본고사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그 시험감독관이 생각나면서 화가 나는 겁니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저는 저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에는 그런 기도가 의미있는 기도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수능당일의 사건이후, 그 시험감독관을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더라면 어떠했을까라고 잠시 명상에 빠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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