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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 2008

5/23 – 다윗과 그 잘난 아들들

지난 금요일은 두 주 만에 다시 성서마당으로 모였습니다.
나눈 이야기는 이미 말씀 드린 대로 “다윗 그 잘난 아들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짚어보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족장은 아들인 이삭에게 그리고 또 그 아들인 야곱에게로 세습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습은 일단 여기서 끝나고 이집트로 들어간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모세라는 지도자에 의해 이집트에서 탈출하게 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일을 또 다른 지도자인 여호수아에 의해서 완성되게 됩니다. 가나안 정착 생활에서는 지역별로 재단이 닥칠 때 마다 그 재난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백성들 중에서 사사(판관)들이 일어나서 재난을 수습하고 수습이 끝나면 다시 평민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제사장제도는 사사시대의 마지막에 나타나게 되는데 엘리라는 제사장의 뒤를 이어 사무엘이 등장하고 사무엘을 마지막으로 한 인물이 사사이며 제사장 또는 예언자의 역할을 맡았던 시대를 마치게 됩니다.

이후 나타난 것이 왕입니다. 이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왕을 만들어 달라는 백성들에 요구에 사무엘을 심히 상처를 입게 되고 사울을 왕으로 세워주기는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증폭된 갈등은 결국 사무엘로 하여금 자신이 스스로 세운 왕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왕으로 지명하게 됩니다.

다윗, 그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존경과 사랑 그리고 칭송을 받는 왕이었습니다. 물론 다윗의 출신에 대해서는 성서에서 각기 다른 두 가지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어찌 되었든지 다윗은 백성들 앞에서 사울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되고 이에 불안을 느낀 사울은 사위로 삼으면서까지 다윗을 제거 하려고 했지만 결국 다윗을 제거하지 못하고 숨을 거둡니다.

사울이 살아 있는 동안 북쪽에서 통치자의 역할을 했던 다윗은 사울이 죽은 후 드디어 남과 북을 통틀어 통치하는 왕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다윗의 통일왕국이 누렸던 영광을 두고두고 꿈꾸게 됩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전장에서 자란 인물입니다. 사울과의 갈등도 있었고 당시 주변정세에 밝았던 그의 식견과 다윗을 중심으로 모였던 훌륭한 장수들 덕에 그는 하루가 다르게 세를 불릴 수 있었지만 사울 이후 통일왕국의 왕이 된 이후에는 늘 흩어진 부족들의 암묵적인 도전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군사력과 정치력을 장악한 그에게 있어서 종교력의 견제에 대한 불안이기도 했었습니다. 해서 다윗은 성전체제를 구상하고 예루살렘이라는 곳에 성전을 세우고자 합니다. 그것은 종교력을 한 곳에 집중함으로 하여 각기 부족들이 가지고 있었던 적대적 감정을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을 종교의 중심으로 삼아 모아 들이려는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성전을 세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며 그 유업을 아들인 솔로몬이 이루도록 합니다.

성군이라 했지만 정치적이며 군사적인 인물입니다. 대부분의 정치가들이 그렇듯이 유리할 때는 얼싸안고 불리할 때는 등에 칼을 꽂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충성을 바친 수하 장수조차 거침없이 살해하는 인물이었으며 자신에게 대적하는 자들을 제거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서에서는 그 추악함 속에서도 그가 자신의 허물을 뉘우칠 줄 아는 인물이라고 묘사되기도 합니다. 더욱이 부하 장수의 아내인 밧세바와의 불륜관계가 들어나자 이명박처럼 “발 마사지 걸”이라고 거짓말을 하기 보다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통일왕국을 이루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던 다윗이었지만 왕이라는 화려함 뒤에 다윗은 극히 불행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전장에서 자라며 죽고 죽이는 살육의 현장에 서 있어야 했고 장인인 사울의 살해위협을 피해 도망 다녀야 했으며 자식들간의 살육 장면을 목도 해야 했고 말년에는 자신의 아들인 압살롬의 공격을 피해 왕궁을 버리고 도망쳐야하는 신세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더욱이 죽음을 앞두고 자식들 간의 왕권 다툼에 틈 사이에서 끝내는 솔로몬을 후계자로 세우기는 하지만 자신의 신복들을 저버리게 되고 그로 인해 눈을 감는 순간까지 평안을 얻을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 아들 솔로몬에게 자신에게 충성을 다 했었던 그리고 자신의 불륜을 숨기기 위해 이용했었던 충신 요압을 제거하라는 말을 남길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남자였습니다.

이후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밀지에 따라 자신의 적대자들을 모두 숙청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마침내 아버지의 유업이었던 성전을 예루살렘에 세움으로 하여 정치, 군사, 종교의 모든 권력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습니다. 하지만 절대권력에 절대부패라는 절대진리에 따라 그 말년은 문국현의 이회창으로의 변절처럼 인간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왕권강화와 개인적 욕구추구에 올인 한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모습을 나타내게 되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이어 받기는 하지만 솔로몬의 학정에 시달림을 받아야만 했었던 부족장들의 저항으로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비극에 처하게 됩니다. 결국 그리도 바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던 다윗의 통일왕국은 불과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진 단 이 대에 걸쳐 존속 되었을 뿐 채 삼대를 버티지 못하고 깨지고 맙니다.

불행했던 왕 다윗과 재벌 이세 솔로몬 그리고 개념 없는 아들 르보호암으로 이어진 세습은 마침내 나라의 분열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만들어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너무 많은 내용들이라 세세히 올리지 못했습니다. 혹 의문 나시는 것 또는 더 자세히 아시고 싶은 부분이 있으시면 알려주십시오.

다음 주는 남과 북으로 갈라진 각각의 나라에서 펼쳐지는 왕들의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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