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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 2014

사순절 이야기-18 “하루카 이야기”

안녕하세요. 뉴헤이븐에 사는 조경원입니다. 2014년을 정신없이 시작해서 그런지 이제 곧 사월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이
안납니다. 추위 마저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아직도 어슬렁 대고 있는건지, 2014년 들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똑같은
오리털 잠바를 입고 출근하고 있네요. 다들 잘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하루카와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하루카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습니다. 곧 확인 하실 수 있을겁니다. 저는 뭐 하루카한테
고맙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고맙고, 하나님께 고마울 따름입니다. 방금 사순절 이야기로 뭘 쓸지 하루카한테 물어봤더니,
‘우리가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감사한 내용이 뭔지 쓰면 어때?’ 라고 하네요. 그래서 짧게나마 하루카를 좀 더 인터뷰
해봤습니다. 하루카는 책상에 앉아 자기 페이퍼를 쓰면서 저를 등진채 쳐다보지도 않고 무심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하루카 그동안 어떻게 살고 있었는데?

처음엔 슬펐어. 그래서 오빠한테 화풀이도 많이 했고.

왜 슬펐는데?

아픈거 슬프잖아. 하고싶은 걸 다 못하니까. 그리고 배운거 많아. 뭘 배웠냐면, 몸이 아프기 전 하루카로 돌아갈 수 없다는거.
처음에는 예전이랑 몸 상태가 너무 많이 달라서 빨리 예전처럼 회복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전 처럼 돌아갈 수도
없다는걸 알았고, 그렇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는걸 알았어. 왜냐하면 예전에 나랑 지금 나는 많이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

어떻게 다른데?

나는 사고 이후로 인생 자체를 어떻게 보는지가 바꼈어. 어떻게 바꼈는지는 지금 프로세스 중이라 잘 모르겠지만 엄청 달라.
그래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자체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

감사한건?

많지. 근데 나는 ‘하나님이 너를 살려줬다’ 이런 이야기 듣는건 별로야. 우선 하나님은 사고를 계획하고, 허락했다가 살려주는
분도 아니고. 하나님은 우리한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고 믿는데, 그런말 들으면 ‘하나님이 너를 살리셨니까 너는 어떻게
어떻게 해야돼’ 하는 아이덴티티가 부여되는거 같아서 싫어. 내가 힘든 가운데 같이 있어주는 하나님인거, 그냥 그거 배우고
있는거 같아. 근데 오빠가 나를 많이 사랑해 주는거 너무 감사해.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기도하면서 같이 사랑하면서 사는걸
배우는 중이야.

뭐 짧지만 하루카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저 역시 하루카가 마지막에 한 말,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기도하면서 같이
사랑하면서 사는걸’ 배우는 중입니다. 그러고 보면 크리스찬으로 세상을 산다는게 대충 이 한문장으로 압축되는것 같기도 합니다.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불완전한 인간으로 사는 이상 죽을때까지 배워야겠지요. 이상 하루카와 조경원의 사순절 묵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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