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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 2012

사순절 이야기 (18) – 감미로운 코네티컷

떠난 겨우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코네티컷에서 지냈던 기억을 떠올리려니 벌써 먼 옛날처럼 가물거린다. 무딘 기억력 때문에 종종 같이 산 사람 같지 않다고 아내에게 면박을 당하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거기서 보냈던 일 년이란 긴 세월과 떠난 지 단 두 달밖에 안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의 참새 머리 기억력만을 탓할 것은 아닌 것 같다. 기억의 생생함은 단지 겪었던 기간에만 비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순간적인 경험이라도 평생 잊혀 지지 않고 생생하게 지속되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코네티컷에서 보낸 일 년은 아무런 충격 없이 밋밋하고 의미 없게 보냈던 시간일까? 분명 그렇지는 않다.

신록이 가득하다 못해 어두컴컴하기까지 하고 시야가 뻥 뚫린 전망이 그리울 만큼 아름드리 나무들로 터널을 지나는듯한 자동차 길들, 그 길을 놀라는 기색도 없이 태연히 지나가는 사슴들,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토끼며 스컹크며 두더지며 아침이면 지져대던 이름 모를 온갖 새들, 밤에 교회에서 돌아와 주차하고 아파트로 올라가는 조그만 언덕에 쏟아지던 무수한 별들, 그 자연 속에서의 생활이 내 인생의 어느 순간에 맛볼 수 있던 것이었겠는가. 대학 도서관 3층 한 구석에 놓여 있는 안락 의자 두 개를 맞대어 놓고 하나에 몸을 파묻고 하나에 두 다리를 올려놓은 채 잠이 오면 잠을 자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노트하며 논문을 읽던 그 편안함은 또 언제 다시 가져보겠는가. 교회에서 저녁 식사가 끝나고 부엌에서 설거지 그릇을 닦으며 수다를 떨고 교회 마당 어두운 구석에서 그리운 얼굴들과 담배 한 대 필 생각에 매 일요일을 기다리지 않았던가. 보름이 멀다하고 이 집 저 집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외국 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을 달래 주었던 정겹고 고마운 그 얼굴들을 어디서 다시 만나볼 수 있겠는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추운 새벽 3시에 거처까지 먼 길을 안내하고 미리 난방을 해놓는 것도 모자라서 이불까지 갖다 주는 세심함과 도착 다음 날 정착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하루 종일 함께 도와준 친절이 이 험한 세상에 어디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인가.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먼 옛날처럼 가물가물하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겪어볼 것 같지 않은, 너무도 의미 깊고 감미로운 것들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기억이 가물거리는 이유를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거의 확신하건데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코네티컷에서의 일 년이 너무나 감미롭고 특별했다는 데 있다. 그것은 귀국 후 한국에서의 두 달 생활과는 너무 다르다. 한국에서의 생활 또한 즐거우나 어쨌든 코네티컷의 생활과는 너무 다르다. 그러니 비현실적이고 먼 옛날의 추억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코네티컷에 대해 느끼는 그리움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더욱더 빨리 잊어야 한국에서의 적응이 빨라질 것이 아닌가. 기억이 어렴풋해 진 데에는 분명 이런 자기 보호 본능도 작용했을 것이다. 지금은 많이 잊었지만 이런 종류의 것은 자기를 보호해야 할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새롭게 추억이 되어 되살아난다. 잠이 오지 않는 이불 속에서는 더욱더 생생하게. 코네티컷의 그리운 얼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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