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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 2011

사순절 이야기 (12) – 친구

제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중에 “친구”라고 있습니다. (참고로, 기현애미는 그 영화가 영화의 범주에 들어가 있는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할 정도로 ㅜㅜ 제 취향과 완전 반대인) 제 고향, 소위 불X친구와 함께 그 영화를 보러 가서는 끅끅 거리며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따른 이유는 없구요, 단지 너무 실감나는 옛날 고향 친구들의 체취가 물씬 묻어난 영화였다고나 할까요.

머리가 좀 크고나서는 친구의 개념이 불X친구에서 좀 확대가 되었습니다. 학원시절, 대학시절 친구들, 더 나아가 드물게 사회생활에서 만난 친구들까지. 제법 친구가 많아지다보니 나름의 분류 기준이 생겼습니다. 간단하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내 결혼식에 왔었던 친구 혹은 나머지. 굳이 따지자면, 제가 결혼할 무렵까지 꽤나 적극적으로 교제(?)를 하던 녀석들은 친구로 분류되고 아닌 녀석들은 자연스럽게 기억의 뒷편으로 묻혀버리게 됐었죠. 친구아닌 친구가 생겨났다는 말이죠.

요즘 Cyworld나 Facebook을 보면서 그런 친구의 개념을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가족관계의 변질을 가져오면서까지(e.g. 일촌맺기) 혹은 얼굴 팔아가며 친구로 연을 맺기를 남발한 나머지, 어느덧 내 친구의 존재를 목록을 뒤져서야만 아~하 하게되는 웃기는 상황까지 와버린듯 하네요. 심지어는, 내가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친구맺기 메일을 날려오는 악연조차도 친구로 보듬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해야하는 서글픈 현실도 생겨났구요.

뭐 나쁘게 볼거 있겠습니까. 공일오비의 노래처럼, 그 사람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더 궁금하고 해외여행 가봤는지 등등…사랑을 하게되면 마음에 드는 연인의 뒷조사(?)가 하고싶어지고, 그런 뒷조사를 위해서 무수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할텐데, Facebook이나 싸이에서 허무하리 만큼 그런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는 장점도 있겠죠.물론 스토커를 양산할 수 있다는 단점도 함께.

아무튼, 친구란 의미 요즘 참 모호하네요. 코흘리개 꼬맹이부터 80드신 어르신까지도 My friend가 되는 너그러운 미국생활에서는 이런 모호함에 익숙해지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요즘, 일본의 지진이 하나님의 천벌이라는둥 그 말을 듣고 할렐루야를 외치는 상식 이하의 사람들 얘기를 듣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정도에 따라 나는 기고 너는 아니고 머 그런 잣대로 사람의 생사가 갈린다는 아주 위험한 생각일 것입니다. 내 스스로 삐침의 잣대로 혹은 일촌의 잣대로 친구를 나눌 지언정 친구로 간택을 못받은 사람들을 내가 미워한다는 것은 아닐것입니다. 다만, 내가 신이 아니기에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없고 모든이의 친구가 못될 뿐이고, 그 점이 하나님과 나라는 인간의 차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 하나님과 나랑도 일촌인데, 자식이 밉다고 불지옥에 빠뜨리는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과의 친구맺기는 그만둘랍니다.

하나님과의 일촌관계를 사칭하는 자들이 세상을 미혹케 하는 작금의 현실에 답답하기만 하네요.

이메일 주소라도 알려주시면, 검색창에 찾아보아서 친구맺기라도 할텐데,,,, 취미는 뭔지, 어떤 주제에 관심이 많으신지, 학부전공은 멀 하셨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Follower가 되는 일은 이리도 멀고 험난한 길인가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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