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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9 2009

믿음에 대하여.

오늘 평신도 설교는 조명진씨가 맡아 주셨습니다.
원래 계획은 동영상을 찍어 올리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윤태연씨가 “동까스”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던 관계로 “동영상”을 찍지 못했습니다.
(참고로 “동까스”는 절묘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쪽씩 먹었습니다. ㅋㅋ)
하여, 제가 조명진씨의 설교 요약을 받아 직접 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

광섬유 출력부에 구비된 각 광섬유는 중심부에 위치하는 상대적으로 굴절율이 높은 코어(미도시)와 코어를 감싸고 있는 상대적으로 굴절율이 낮은 크래딩(미도시)을 구비하고 있다. 한편, 도(a)에 도시된 바와 같이 각 광섬유…. >?ㅍ@#$^*%ㅏ?
이게 뭔 소리냐?
이런 이건 뒷장이군요… 알뜰한 조명진씨 이면지를 사용하여 설교 원고를… 캬하

그럼 다시 시작-

信, 믿을 “신”자는 사람 인변에 말씀 언을 사용하며 이는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다.
즉 말이 믿음의 근거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을 믿으라는 것, 하나님의 말을 따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적 근본주의 기독교 신자들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의 말을 믿는 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있다.

1) 무조건 믿으라고 한다.(맹신) : 이들은 궁금한 것이 있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고 자신들은 믿음이 있음으로 궁굼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사람간의 연애함에 있어서도 상대방에 대해 더욱 궁금해 지고 더욱 알고 싶어 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면 이는 사랑과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 이라고 하는 것인데 하나님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은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2) 하나님보다 성서를 더 믿는다 : 성서는 수천년간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에서 사람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를 저술 한 사람들의 사회 문화적 배경과는 다른 각도에서 해석 해야 한다. 그럼에도 성서를 쓰여진 문자 대로 해석 한다는 것은 성서를 하나님보다 더 우대하기 때문이다.

3) 하나님보다 목사를 더 믿는다 : 목사의 말이 곧 진리라고 한다. 그러므로 목사의 말에 반대 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의 기독교관이나 십자군 전쟁 또는 독일 기독교인들이 2차세계대전 중에 보여준 행동들은 하나님보다 목사의 말을 더 믿은 결과이다.

4) 믿음의 목적이 이기적이다 : 자신의 영생이나 출세 그리고 가족의 안녕등 오로지 자신에 대해 좋은 것만을 추구하는 것을 믿음의 목적으로 삼는다. 개인의 소망이나 초기 기독교의 금주 문화등은 가족들의 못된 버릇을 고치기를 위한 목적으로 기독교가 사용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으며 남자들에게는 여자친구가 생길 수 있다는 등등의 이유를 믿음의 목적으로 삼고있다.

5)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을 배척한다 : 다른 종교를 배척 하는 것 뿐 아니라 같은 기독교 안에서도 교회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같은 교회 사람들 끼리만의 관계를 형성한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칭하며 자신의 좁은 시각과 시야 안에 모든 사람들을 맞추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기독교 신자, 믿는 자들의 모습은 어떤것이 되어야 할까?

1)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 궁금한 것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고민 해 봐야 한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에 대한 실천은 이웃을 단지 사랑한다고 말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웃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2) 성서에 대한 올바른 재 해석을 해야 한다 : 시대와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서 현실에 맞게 해석 해야한다.

3) 예스 맨이 되어서는 안된다 : 목사의 말에 항상 “예”라고 대답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든지 자신이 판단하고 “예”라고 할 것과 “아니”라고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 “아니”라고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글쎄요”라고 한다.

4) 자신의 변화가 믿음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이 믿음의 목적이다. 불교의 깨달음과 같은 것이며 이를 통해 아름다운 사회 즉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 믿음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5) 나와 다른 자들과의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 종교관이 다르더라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함에는 다름이 없는 것이다. 절대자는 한 존재이고 다만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말씀이 다르더라도 넓은 세상을 넓은 시각으로 보고 화합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서로 이해하고 인정 해주어야 한다.

기도:
하나님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행하여 이 땅위에 하나님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따를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간절히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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