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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 2012

머리를 자르다

머리를 잘랐습니다.

어떤 가수는 ‘머리를 자르고 돌아 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라고 노래 했지만 나는 내내 인내했던 뿌듯함으로 ‘드디어 해냈다’하고 활짝 웃었습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처음 시도는 불과 5~6인치 만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잘라버렸던 덕에 실패를 했었고 두번째 시도는 8인치를 넘기자 마자 바로 잘랐던 것인데 비해 이번에는 자라난 머리 길이와 비례한 인내심에 힘입어 마침내 13인치까지 길러서 자를 수 있었습니다.

머리를 길러 기부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수년 전 어린이 소아암 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주정부 마다 다른 정책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저소득층 소아암 환자들에게 치료비는 지원을 해주지만 가발 비용은 개인들이 부담 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인조 모발이 아닌 천연 모발로 어린이들에게 맞춤 가발을 만들어 주는 경우는 그 가격이 이천불 가까이에 이른다고하니 저소득층 가정에게는 상당한 부담이며 그로 인해 소아암 치료를 받거나 회복단계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몸으로 암과 싸워야하는 고통에 더하여 마음으로까지 외모로 부터 받는 부담으로 잃어버려져가는 자신감과 싸워야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통해 머리카락을 모두 잃어버린 채 굳건히 암과 싸워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 같아서는 모든 아이들에게 멋진 가발을 하나씩 다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그만한 능력이 없었던지라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머리를 길러 아이들에게 주기로 했던 것입니다.

머리를 기른 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머리를 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샴푸 비용이 많이 들고, 버스 창문을 통해 들이치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이 눈을 찌르기도 하고, 자다보면 온통 머리카락이 얼굴과 뒤엉키기도 하지만 이 년여 이상을 오직 내 머리카락이 한 아이에게 자신감 되찾아주는 작은 부분이 된다는 생각으로 기다리다가 마침내 머리를 자르는 순간에 느끼는 기쁨은 충분히 투자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머리를 길러 묶고 다니다 보면 주위에서 이런저런 말들을 듣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왜 머리를 기르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들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저거 목사 맞어?’ 또는 ‘목사가 저 꼴이 뭐야?’하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해 줍니다.

“그럼 목사가 안 하면 누가 할까? 목사니까 하는거야”

우리는 흔히 ‘가진 것이 없어 줄 것도 없다’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둘러보면 사실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 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또는 주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서 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정수 장학회’가 또 말썽입니다.
박정희가 강탈한 재산으로 만들어 진 것을 박근혜 후보는 ‘내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줄기차게 항변을 하고 있지만 ‘내 것도 아닌 것’을 왜 그리도 붙잡고 있는지. ‘가진 것이 없어 줄 것이 없다’고 생각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박정희가 훔친 장물이란 것을 몰라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 줄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어떤 것을 줘야 할지 몰라 줄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있는 것들이 더해요, 더해’라는 말을 하는가 봅니다.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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