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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 2011

국외부재자 선거인 신고

오늘 구름 잔뜩 내린 하늘을 가로질러 허걱허걱 보스톤으로 달려 갔습니다.
목적은 오직 하나 “국외 부재자 선거인 등록”
이번 주가 아니면 별도로 시간을 낼 가능성이 전혀 없던 지라 학교가 잠시 쉬는 틈을 타서
당연히 스쿨버스도 잠시 쉬는 틈이 생겨서…

보스톤 총영사관에 도착한 시간이 하필이면 점심시간이 막 시작 한 때.
“이거 한 시간 기다려야 하는 거야? 에잇, 이미 50쎈트 미터기에 넣었는데”
그런데 보니 어떤 사람이 프라스틱 봉투를 들고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아까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 지나갔던 사람 인듯 한데 음식 냄새가 나는 것이 점심을 사가지고 들어 가는 듯 합니다.
“흠 문은 열려있는데, 일단 들어가서 상황을 보고, 정 안되면 점심부터 먹고 와서 신고를 하든지 해야겠군.”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나 말고도 몇몇 사람들이 있습니다. 창구 안쪽에는 직원 한 사람이 민원인과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점심 시간이라…”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우리가 시간을 잘 못 맞춰 왔으니까요. 기다릴테니 천천히 점심 식사 하시고 오세요”

저런 참 마음도 고우시지, 나 같으면 ‘언제부터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점심시간 따로 챙기고 그랬냐? 이 머나먼 이국 땅에서 오로지 조국의 번영과 민족의 창대를 위해 불철주야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아니 해 지고 나서까지고 온갖 수모와 피땀을 흘리는 해외 동포들을 위하여 너희들 그 깟 점심 시간이 뭐 대수라고, 난 매일 점심 굶어가며 …’라고 하려는 순간 그 직원이 나를 보더니 ‘무슨 일로 오셨어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음… 그게 뭐더라, 재외국민… 선거인…”
“아, 영주권자이세요?”
“예, 그런데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더니 사무실 안쪽에 대고 누군가 담당자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름을 부르자 마자 마치 안에 어디선가 숨어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 어떤 여자 직원이 쪼르르 달려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선거인 등록 하러 오셨어요?”
“예, 지난 주에 전화로 문의했었는데”
“아, 예, 안녕하세요? 영주권 카드하고 여권 가지고 오셨죠? 저 주시면 카피 하고 바로 돌려 드릴께요”
“예, 여기 있습니다.”
“여기 이 신청서만 작성 해 주시면 됩니다. 제가 카피 해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러시죠.”

신청서 양식은 뭐 별거 없었습니다.
이름, 말소 전 주민등록 번호, 최종 한국 거주지, 현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등 신청서를 기입하고 있는데 여권과 영주권 카드를 가지고 들어갔던 직원이 다시 나와서는 제게 영주권 카드와 여권을 건네 주면서

“저희가 지금 점심 시간이라… 양식을 다 기록 하시고 나면 창구 안쪽으로 그냥 밀어 넣어 주세요, 접수증은 이메일로 바로 보내드릴께요. 죄송합니다.”
그러더니
“여권하고 영주권 카드 잘 넣으시고요,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하고는 사무실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신청서를 다 기입하고 창구 안 쪽으로 밀어 넣고 돌아서 나오면서 생각 했습니다.
“괜히 죽 쒀서 쥐 줘서 그렇지, 역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정말 많이 좋아 졌군.”

영사관에서 나오면서 계획 했던 대로 짜장면을 먹어야 하겠다고 생각 하고는 아내에게 전화 했습니다.
“나 다 끝났는데, 짬뽕 사다 줄까?, 아니면 탕수육이라도?”
“그거 안 먹어, 피자 사와”
“어… 예쓰 맴!”
“크램 피자, 마늘 듬뿍 넣어달라고 해”
“화이트 크램, 라지, 엑스트라 갈릭!”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하버드 스퀘어를 향해 전력 질주, 어퍼 크러스트 가게 앞 길 한 복판에 일단 차를 세워두고 쪼르르르륵 가게로 뛰어 들어가서
“화이트 크램, 라지, 엑스트라 갈릭! 얼마나 걸려?”
“15분”
“알았어 세 바퀴 돌고 픽업하러 온닷”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누가 뒤에서 빵빵 거리든 말든 하버드 스퀘어를 천천히 네 바퀴 돌고, 다시 가게 앞에 차를 팍 세워 놓고 뛰어 들어갔습니다.

“야, 내 피자”
“엉, 다 됐다”
“오케이… 탱규, 탱큐”

‘피자아~야 식지~~ 마~~아~라’ 노래를 부르며 I90 웨스트를 타고 무지막지 달려 돌아왔는데, 아무리 그래도 <노래를 불러도 피자는 식는다>는 법칙은 어쩔 수 없었지만 돌아와 메일을 여니 떡하니 아래와 같은 것이 나보다 먼저 도착 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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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부재자신고]
접수증
접수번호418 접수일2011.12.28
성명 한글 장호준 영문 HO JUN CHANG
국내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711 (27/8) 도시개발아파트 102동 1518호
지역선거구 강남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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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제 선거구가 <강남> 이랍니다.

“강남, 넌 이제 죽었다. ㅋㅋㅋ”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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