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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 2011

교회여, 옷을 벗어라!

가진 것이 많은 자는 잃을 것도 많다. 잃을 것을 두려워하며 산다.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잃을 것도 없다.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산다.

가진 것이 너무 많다. 재물 뿐 아니라 권력까지도 너무 많다. 그럼에도 가지려는 욕망에는 끝이 없다. 더 많이 가지려고 안달을 한다. 잃지 않으려고 더 많은 안간힘을 쓴다. 잃어버릴 것에 대한 더 많은 두려움에 떤다. 교회가, 세상이 그렇다.

사람들이 모였다. 예수의 가르침이 좋아서 모였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좋아서 모였다. 모인 사람들 중에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도, 가진 것이 적은 사람도 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진 것을 가지고 왔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과 나누어 쓰기 위함이었다.
사도들이 모아진 물건들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사도들 중에는 히브리계 유대인들이 대부분 이었다. 모인 사람들 중에는 헬라계 유대인들도 있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다. 히브리계 유대인 사도들은 헬라계 유대인들 보다 히브리계 유대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나누어 주었다. 가끔은 헬라계 유대인들을 빼먹기도 했다. 결국 싸움이 났다. 예수 이후, 처음 교회가 시작 되었던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사도행전)

과학벨트가 시끄럽다. 대통령이 경상도 사람이란다. 충청도에 과학벨트를 세운다고 했던 약속을 뒤집겠다고,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한단다. 공약은 그저 공약(空約)일 뿐이라고 한다.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 신의를 저버린다는 비난도 감수하겠다고 한다. 그것도 대통령이라는 자가 그렇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지만 밖으로 펼쳐질 수 있을 때, 안으로 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안으로 굽은 채 멈추어 있는다면 팔로서의 기능은 할 수 없게 된다. 불구가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불구가 되면 나라가 불구가 된다.

인간 진화 과정에서 몸의 털은 2~3백만 년 전부터 사라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인간은 십여 만 년 전부터 몸을 보호 할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늘 무언가를 몸에 걸치고 살아왔다. 처음 옷은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구멍을 내고 바느질을 하면서 인간은 옷에 주머니를 만들었다.
인간이 주머니를 만든 순간부터 채움을 향한 끝없는 욕망은 시작되었다. ‘텅빈 충만’은 벽걸이로 걸어 놓는 것일 뿐, 빈 주머니를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 중 가장 불완전 한 존재이다. 자신의 불완전을 소유로 채우고자 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집트의 무바락 대통령이 쫓겨 났다. 민중의 힘으로 내쫓아 버렸다. 이제는 그가 지난 삼십년간 부정으로 모은 재산이 말썽이다. 어떤 사람들은 700억 달러가 될 것이라고 한다. 미국 정보통은 30억 달러 정도일 것이라고 한다. 이집트의 무바락은 삼십년 독재로 3 조원을 긁어 모았다는 것이다. 사대강 사업 5년에 이명박 정부는 30조원을 삼켜버린단다. 주머니가 있어서 그렇다.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그렇다.

성남 비행장을 롯데에게 내어주었다. 조중동에게 종편을 내어주었다. 가난한 자들의 밥그릇을 사대강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 건설사들에게 내어주었다. 형님예산에 부인예산까지 내어 주었다. 이제는 과학벨트까지 내어 준단다. 통 큰 주머니를 채우기 위함이다.

목사와 목사가 치고 받고 싸운다. 목사와 장로가 멱살을 잡고 싸운다. 주머니가 있어서 그렇다.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 그렇다.

어떤 사람이 예수에게 와서 묻는다.
“제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가 말한다.
“네가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알고 있느냐?”
그가 대답한다.
“이 계명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예수가 말한다.
“잘했다, 하지만 아직 한 가지 부족 한 것이있다. 네가 가지고있는 것들을 모두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런 후에 나를 따라 오거라.”
그 사람은 부자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다.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다. 예수의 말을 듣기는 했지만 잃을 것이 두려워 예수를 보지 못한다. (마가복음)

더 크게, 더 높게 교회당을 짓는다.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교회 종탑을 쌓는다. 더 많은 교인들, 더 많은 헌금들, 더 많은 채움들, 더 많은 주머니가 달린 옷들, 끝을 모른다. 빈 주머니는 어디에도 없다.

“거머리에게는 달라고 보채는 딸이 둘, 아무리 먹어도 배부른 줄 모르는 것이 셋, ‘족하다.’ 할 줄 모르는 것이 넷 있으니, 곧 지옥과 …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할 줄 모르는 불이다.” (잠언)

교회, 세상이 거머리가 되어버렸다. ‘족함’을 모르는 것은 불이다. 끝까지 간다. 모두 다 태워 버리고, 남은 것이 없을 때까지 ‘족함’을 모른다. 나도 태우고, 너도 태우고, 다 태우고 나서야 끝이난다.
히틀러가 그랬다. 일본 군국주의가 그랬다. 이승만이 그랬다. 박정희가 그랬다. 남을 태워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지른 불이지만 결국은 자기까지 다 태운다. 다 죽고 나서야 끝이난다.

주머니는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이름이 바뀐다. 돈을 넣으면 돈 주머니가 된다. 사탕을 넣으면 사탕 주머니가 된다. 정의를 넣으면 정의 주머니가 되고, 사랑을 넣으면 사랑 주머니가 되지만 뇌물을 넣으면 뇌물 주머니, 부정을 넣으면 부정 주머니, 똥을 넣으면 똥 주머니가 된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묻는다.
“언제 당신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실 것이며 언제 우리가 당신을 볼 수 있습니까?”
예수가 제자들에게 대답한다.
“부끄럼 없이 너희가 벗고 또 어린아이들처럼 너희의 옷가지를 벗어서 너희 발아래 두어 밟게 된 즉 너희는 살아계신 분의 아들을 보며, 너희들은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도마복음)

예수가 말한다. 부끄러움 없이 옷을 벗어 버려라.
더 크고, 더 높은 교회당이 없음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종탑이 없음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더 많은 교인들, 더 많은 헌금이 없음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더 많은 주머니가 달린 옷이 없음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예수가 말한다. 두려움을 밟아 버려라.
가진 것이 없을 때, 잃을 것이 없다. 잃을 것이 없을 때, 두려움이 없다.
교회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 재물 뿐 아니라 권력까지도 너무 많다.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에 떤다. 재물에 빌붙어, 권력에 빌붙어 거머리가 되어 버렸다.
예수가 보이질 않는다.

교회여, 부끄러움 없이 두려움의 옷을 벗어라!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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