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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 2010

잘못 했다고 해라

성서에는 창세기라는 책이 있다.
우주가 만들어진 이야기, 세상이 만들어진 이야기, 해와 달, 하늘과 바다, 새와 물고기 그리고 사람이 만들어진 이야기를 적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 책이 창조론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며 이 이야기를 가지고 세상이, 사람이 만들어진 시기를 계산하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창세기라고 하는 책은 신앙고백을 위한 신화이다. 물론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도 역사적 사실도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창세기에 나타난 신화에서 사람들은 세상과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 것이다.

창세기 신화에 따르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여자와 남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나님 형상대로 즉 자기를 닮은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 말을 어겼다는 것이다.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이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사건은 발생했고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사람을 부른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사람이 대답한다.
“벗은 몸을 드러내기 두려워 숨었습니다.”
하나님이 말한다.
“네가 벗었다는 것을 누가 알려 주었냐? 내가 먹지 말라는 것을 네가 먹었구나!”
이미 엎질러진 일이다. 잘못을 수습하는 길은 셋 중 하나다.

첫 번째는 무조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다.

K21 장갑차, 한국 군대가 자랑하는 ‘명품 무기’가 결국 인명 사고를 냈다고 한다. 이전에도 같은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조건 결함 없다고 우겼다는 것이다.

기자가 묻는다.
“최초 설계가 잘못 된 것이 아닙니까?”
대한민국 국방부 합동 조사단 관계자가 대답한다.
“설계의 결함이 아니라 미흡입니다.”
기자가 다시 묻는다.
“설계 결함은 없고 미흡하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미흡 했다고 해석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석을 한다고요?”
“수상 운행에 있어서 모든 경우 안전해야 하는데, 병력이 탑승을 안 해서 장갑차가 가벼운 경우…”
“그럼 설계가 잘못 된 것, 결함 아닙니까?”
“설계 미흡하고 결함은 굉장히 큰 차이가 있어서…”
“결함과 미흡의 큰 차이가 뭡니까?”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K21 장갑차가 수상 운행을 하는데 모든 경우 다 위험 한 것은 아니고, 장갑차가 가벼운 경우, 그러니까 결함은 아니고…”

무조건 우기면 통하는 사회가 되었다.
BBK는 내가 만들지 않았다고 우기면 된다.
사대강 사업은 좋은 것이라고 우기면 된다.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고 우기면 된다.
부자들의 감세가 나라 경제를 살리는 일이라고 우기면 된다.
청와대는 정치 사찰이나 대포폰 사건을 전혀 모른다고 우기면 된다.
하지만 거짓말이든 우기는 것이든 때가 되면 반드시 들통 난다.

아담은 무조건 아니라고 우기지 않는다. 대신 두 번째 방법, 핑계를 댄다.

“당신께서 제게 짝 지워준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따 주기에 그저 먹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여자에게 묻는다.
“네가 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느냐?”
여자가 대답한다.
“뱀에게 속아서 따먹었습니다.”

일제로부터 후작이라는 작위까지 받았던 친일파 이해승의 재산을 후손들에게 돌려주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고 한다. 시가 318억에 달하는 땅이라고 한다. 이해승의 후손들이 소송을 낸 근거는 그 시대는 다 그랬었다는 것이라고 한다. 이해승의 잘못이 아니라 시대가 그랬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일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작이라는 작위를 받았고 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에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법원도 그렇다고 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시대가 그랬었다. 그래서 안중근, 윤봉길 의사는 일제의 손에 사형을 당해야만 했고, 수 만의 조선 젊은이들은 고향 땅을 버리고 만주 벌판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고, 수를 셀 수도 없는 우리의 여인네들은 일본군의 성노예로 죽어가야만 했었다. 시대가 그랬었다. 모든 것이 시대 탓이다. 세월이 그래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시대가 그렇다고 한다.

핑계는 좋다. 그렇다고 해서 책임을 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 핑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난, 너를 내 형상을 따라 만들었다.”
인격을 갖춘 존재로 만들었다. 생각하고 판단하며 눈물 흘릴 줄 아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가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게 하는 존재를 우리는 인간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존재를 인간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뱀에게 말한다.
“네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저주를 받을 것이다. 죽기까지 배로 기어 다녀야 한다. 여자와 원수가 되어 그의 발꿈치를 물려고 할 테고 여자는 네 머리를 밟아 죽이려 할 것이다.”
하나님이 여자에게 말한다.
“아기를 낳기 위해 고생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남자에게 말한다.
“너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게 된다.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 너는 흙으로 만들어졌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잘못을 수습하는 마지막 방법은 잘못 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확신이 있어야 한다.
내가 잘못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아니 내 잘못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거짓 고백이요 사기일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 졸속으로 진행 되었다고 대 국민 사과를 했었다. 슬그머니 이년이 지난 후에 이제는 당시 촛불 집회에 참여 했던 사람들 중 반성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질책을 했다고 한다. 잘못에 대한 고백, 사과가 진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잘못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어서 그렇다. 그저 사기를 친 것 뿐 이었다.

예수에게 시로페니키아 출신의 그리스 여인이 찾아왔다. 이방인, 여인이다. 유대인의 관습에 따르면 상종하지 못할 대상이다. 여인이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그 여인의 딸이 병들었다는 것이다. 병을 고쳐 달라는 것이다.

예수가 이방여인에게 말한다.
“자녀들에게 먹일 빵을 개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
개라는 말이다. ‘넌 개다’라는 말이다.
원인은 모르겠다. 하지만 예수가 잘못했다. 예수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이건 온 인류를 아니 온 우주를 사랑한다고 하는, 사랑해야 하는 예수의 모습이 아니다. 잘못이다. 예수가 잘못 한 것이다.

이방여인이 예수에게 말한다.
“맞습니다. 하지만 개들도 자녀들이 흘리는 빵 부스러기를 얻어먹지 않습니까?”
이방 여인이 예수를 때렸다. 혼내고 있다. 질책하고 있다. 예수가 지금 이방 여인의 회초리를 맞고 있다. 종아리가 터지도록 아픈 회초리를 매섭게 맞고 있다. 아프다.

예수가 대답한다.
“가라, 네 딸의 병이 나았다.”
이 말뿐, 예수는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할 말이 없다. 자기 잘못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해서 잘못을 고백하고 그 잘못을 고친다. 그 외에는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은 생각하고 판단하며 눈물 흘릴 줄 아는 존재이며, 자기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 창세기의 신화가 담고 있는 의미이다. 또한 사람은 잘못 생각하고, 잘못 판단하며, 잘못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졌음에도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지고 고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예수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의미이기도 한다. 그리고 기독교는 창세기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는 종교이다.

한국 기독교, 목회자부터 교인들까지 교회 모두가 잘못을 고백함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우기지 말아야 한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핑계를 대서도 안 된다. 잘못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가 했던 것처럼 고쳐야 한다. 그리 할 때 성서의 야훼가 한국 기독교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성서의 예수가 한국 기독교의 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1 comment

  1. 기현애비

    문제는 잘못을 잘못이라 못느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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