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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 2014

사순절 이야기-13 “위기의 나이”

얼마 전 목사님으로부터 사순절 필자 목록을 받았는데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연구년으로 코네티컷에서 일 년을 보내고 귀국한 지 이 년이 막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 세월이 빠르다. 세상도 빨리 바뀐다. 대학에 자리를 잡은 삼십대 중반 이후는 머리 속에 특별한 추억이 남아 있지 않다. 그저 집에서는 애들 키우고 학교에서는 논문 쓰고 수업 준비하는 것이 일상인데 이것이 뭐 추억거리가 되겠는가. 그래서인지 삼십 대 중반이 엊그제 같다. 올해 나이 쉰네 살인데 근 이십 년이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삼십 대 중반 이전의 삶을 뒤돌아 보면 풍성하고 마음이 벅차고 뿌듯해 진다. 수도도 전기도 없고 배고팠던 시골 초등학교 시절은 매해 일 월 일 일마다 마당과 마루를 깨끗이 청소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곤 했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앞으로 펼쳐질 인생을 상상하며 뿌듯해 했었다. 프랑스에서 유학할 때는 잠자리에서 떠오른 새로운 생각을 비몽 사몽 간에 종이에 적고 다음 날 아침 그 생각이 타당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쾌재를 부르곤 했다. 그런데 삼십 대 중반 이후는 별반 감흥이 없이 인생이 밋밋하다.

무슨 차이일까? 삼십 대 중반 이후에는 감수성이 무뎌져서 그런가? 이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아마도 목표가 사라져서 그런 것 같다. 목표가 없으면 희망하는 것도 없다. 희망하는 것이 없으면 열정도 없다. 그래서 하루 하루를 목적 의식 없이 그저 해야 할 일이나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니 특별히 즐거울 것도 슬플 것도 없이 밋밋하다. 그러니 시간이 지났어도 특별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없어 삼십대 중반이 엊그제 같다.

삼십대 중반이 엊그제 같으니 이렇게 살면 내일 모래면 칠십대 중반이 될 것이다. 진짜 요즘은 가끔 불현듯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살다가 갑자기 죽을 나이가 되지나 않을까 겁이 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왜 사는지 새롭게 인생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 한 방법일 것 같다. 하지만 매일 매일 해야 할 일 때문에 새로운 목표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퇴직하고 생각해 보지 하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나는 위기의 오십대를 겪고 있나 보다.

-홍용철-

2 comments

  1. Choonah의 프로필 사진
    Choonah

    목사님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저희 가족이 뉴욕에서 택시를 타고 처음 스토어스에 도착하여 목사님 차를 뒤따라가던 195번 도로가 떠오릅니다. 12월 30일 새벽 2시차창 뒤로 밀려나는 어둠 속 눈 쌓인 나무 숲이 무섭기보다 아늑하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스토어스의 생활은 목사님이 계셔서 일년 내내 아늑했습니다. 살다 보면 언제 밤 새며 술잔 나눌 기회가 또 있겠지요. 항상 건강하십시요. 홍용철 드림

  2. 의 프로필 사진

    홍 교수님,

    그러시면 아니되십니다.
    홍 교수님과 제가 같은 시대 사람들인데 교수님께서 위기를 느끼신다면 저도 위기를….더욱이 저야 말로 이미 딸아이 다 키워 외국으로 내 보내 버렸지만 홍 교수님은 둘째가 이제 중학교 들어갈 나이가 되었으니 아직 위기의 나이 절대 아니십니다. ㅎㅎ

    늘 건강하십시오. 그래야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교수님과 멋진 와인 함께 하리라는 제 목표를 이룰 기회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이렇게 항상 잊지 않고 기억 해 주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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