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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2 2015

사순절 2015 – 열 아홉번째 이야기

지식과 영감의 신앙

제가 현재의 직장에 오기 전에 아산의 대학에서 근무하던 때(2010년)입니다. 평일 저녁 7시가 좀 넘었는데, 혼자 잠만 자는 원룸 아파트의 문을 누가 똑똑 두드렸습니다. 이 시간에 여기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굴까? 하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었는데, 한 젊은 남성이 자기가 전도 훈련을 받았는데 훈련 받은 것을 실습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 날 강의를 준비해야 하기에 거절하려 했지만, 그 단계를 지나야 윗단계로 올라간다고 말하는 얼굴 표정이 안스러워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 말만 하지 말고, 내 말도 들어야 한다고 하며, 하고자 하는 말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들어오는데 갑자기 문 뒤에서 여자분이 싹 나타나서 같이 들어왔습니다. 오호!)

첫 말이, “하나님이 아버지이기도 하고 어머니이기도 한지 아느냐?”였습니다. 제가 당연히 “하나님은 아버지 같기도 하고, 어머니 같기도 하고, 형 같기도 하고, 이모 같기도 하고,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삼촌 같기도 하고… 근데 아버지, 어머니 얘기는 왜 하시나요?”라고 하자, 성경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 ‘엘로힘’인데 이게 복수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덧붙이기를 엘로힘이 복수이고 이는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어머니 두 분을 일컫는 것이라고 친절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그 ‘엘로힘’에서 복수를 뜻하는 표현/부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청년 하시는 말씀: “‘힘’입니다.” 거기에 제가 답하였습니다: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복수 접미사는 ‘임’으로서, ‘엘로힘’의 ‘힘’에서 ‘ㅎ’는 신을 뜻하는 단어(엘로ㅎ)의 일부이고 복수 접미사는 ‘임’이다. 에브라임, 세라핌, 케루빔…에서 보면 공통적인 것은 임이지 힘이 아니다. 어디서 배우셨는지 몰라도 그런 걸 정확히 알고 와서 말씀을 하셔야 하지 않느냐? 그리고 그 ‘임’은 히브리어의 두 복수 접미사 중 하나인데, ‘임’은 명사 대상이 셋 또는 그 이상일 때(plural number) 붙는 접사이고, 복수 대상 명사가 둘일 때(dual number) 붙는 접사는 별도로 따로 있다. 엘로힘에 붙은 접사는 dual이 아니고 그 이상의 plural일 때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엘로힘을 가지고 이 복수 형태가 하나님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있다고 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히브리어를 배워서 이용하시려면 기본적으로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논지를 펴든지 주장을 하셔야지, 그런 잘못된 내용을 근거로 아버지 어머니 두 분, 여럿이 아니고 두 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그러니 지금 제 앞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은 먼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잘 생각해 보시고 한번 더 따져 보시고 제대로 알고 믿고 있는지 짚어 보시라… 그리고는 다른 여러 사항에 대해서도 계속 이런 식의 반박과 일장 연설, 문법 강해, 강의, 설교를 해댔습니다. 같이 왔던 여자분은 그 남자 분에게 자꾸 “우리 그냥 가요…”를 연발했습니다. 그리고 한 그런 식의 얘기를 좀더 하다가 제 거처에서 나갔습니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이름은 잊었지만, 어느 한국 부부를 하나님 아버지와 어머니로 모시는 종교(?)의 포교자(전도자)였습니다.

저는 신은 머리로만 이해하거나 그 사랑을 느끼거나 할 수 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자주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신의 측면을 간과하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 인간의 감성, 이성, 육체, 인간관계, 우주 만물, 영혼… 이 모든 것은 다 신에게서 온 것입니다(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므로 신을 온전히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마음과 영감과 감정, 정서적(heart, emotion, spiritual)의 측면 뿐 아니라, 이성, 합리성으로도 신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의 청년처럼 신을 지칭하는 히브리어 단어(중 하나)가 복수형임을 듣고 (또 자신이 아는 영어 식의 단수/복수의 얕은 지식 한 편을 동원해서) 하나님은 여럿, 그런데 또 편협하게 아버지, 어머니 둘, 그래서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어느 한국 부부를 신이라고 믿으며서 선교까지 하러 다니는 일이 오늘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두 사람, 특히 남자분은 진심으로 아주 진지했고, 그 눈빛은 저를 아주 안타깝게 보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믿는지도 모르면서 또 잘못 믿으면서, 믿기는 열심히 믿는 그런 일이 예수님 때도, 그 이후도, 지금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또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도 하고, 예수님이나 다른 선구자들의 본을 따라 옳은 일도 해야 하고, 머리와 지식으로도 신을 올바르게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그날 밤 제 거처를 방문했던 분들이 제가 준 오렌지 주스를 마시지 않고 그냥 가서 좀 섭섭했습니다. 저녁은 잡숫고 전도하러 돌아 다니신 것이었는지… 늦었지만 밥이라도 먹여서 보냈어야 했나봐요.

정인기

3 comments

  1. 기현애미

    그분들 임자 제대로 만났네요. 열심히 살려는 분들 너무 기죽이신거 아니예요? ^^ 그나저나 저같은 평인들은 평생 코끼리 다리나 만지다가 끝나는거 아닌지…그래도 매일 많이 배웁니다.

  2. Jaehan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진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고 하더라구요.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크고작은 종교전쟁이 다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삯꾼

    정인기 교수님이 보내주신 또 한 편의 사순절 이야기 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러게 그 친구 사람을 잘 골라서 했어야지…
    plural number…dual number… 역시 정 교수님 다우십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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