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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 2015

사순절 2015 – 스물 다섯번째 이야기 – 내눈에 무지개

저는 적록색약입니다 (채도가 높은 색을 밝은 곳에서 볼 때에는 비장애인과 차이가 없으나, 채도가 낮은 경우에는 식별을 못 하거나, 단시간에 색을 분별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이다…라고 위키피디아에 친절하게 나와 있네요^^).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운 짧은 지식을 빌자면, 모계로부터 내려받은 염색체의 영향을 받은 탓에 아버지는 색약과는 무관하시고, 어머니 또한 색약 인자를 보유했을 뿐 발현은 되지 않는 터라 멀쩡하십니다. 심지어, 위로 형이 한명 있는데, 같은 뱃속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저만 혼자 적록색약의 멍에를 지고 태어 났습니다. 어릴적 방울방울(?) 책자를 통한 색약테스트에서 남들과 좀 다른 색감의 소유자(?)라는 결과에 충격이 꽤 컸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자라면서도 장애인듯 장애아닌 장애같은 그넘의 색약이라는 꼬리표는 늘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돌아보면, 적록색약의 속박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지만 뭐 의대를 지원할 여지도 아예 없었고, 덕분에 고등학교때 문과를 가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려니 하고 당연히 받아들이게된 계기라면 계기라고 할까요. 운전면허 시험을 볼라치면 남들은 그 방울이(아시죠들?)책자와 숫자게임을 할때 저 혼자 고고히 별실로 안내되어 삼색 신호등으로 테스트를 하는 잇점(?)도 있구요. 가끔 아내(여러분이 잘 아실 그 자유부인 ㅜㅜ)한테서 어떻게 이색깔이 빨간색으로 혹은 초록색으로 보이냐고 돌연변이 취급을 받을때가 있긴 하지만, 뭐 결혼 14년차에 이젠 그정도는 애교로 넘기게 되죠.

이렇듯, 적록색약을 제가 태어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운명처럼 물려받은 터라, 좋든 싫든 업보로 받아들여 살아오긴 했지만 막상 결혼을 해서 가족을 꾸리다 보니, 혹시라도 나의 색약유전자가 아들에게 전해져서 본의 아니게 그의 인생결정에 영향을 주진 않을까 걱정이 되더군요. 다행히, 아들래미는 너무도 또렷하게 적록을 잘 구분하더이다 (옛날 생물시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엄마가 색약이나 보인자면 모를까 아빠가 색약이라해도 아들이 색약을 물려받을 일은 없다네요^^). 그녀석이 자라면서 생김새나 특성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때마다 흠칫 놀라기는 하지만서두 말이죠 ㅎㅎ.

요컨대, 빨강을 초록과 뚜렷하게 구분 못하는 능력이라는게 비단 색약의 업보를 안고 사는 저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닌것 같습니다. 무릇, 자신의 눈에 좋은 색깔만을 고집하며 명백히 보이는 것들을 애써 거부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걸 보면서, 보고싶어도 볼 수 없는 멍에가 그리 흠잡힐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걸 보면 말이죠.

이 세상 만물이 모름지기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모양으로 만들어 졌을터인데, 자신의 눈에 보이는 그 많은 좋은 것들을 외면한 채로 내가 원하는 것으로만 왜곡하고 비난을 일삼는건 아닌지. 하나님의 뜻을 미루어 살기보다 내맘대로 빨간색을 덧칠하고 왼쪽 코너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몹쓸 인간들에게서 혹시라도 “난 적록색약이었다”는 어이없는 핑계를 듣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모처럼 파란 하늘의 자태는 북극 바람을 동반해서인지 마냥 아름답지만은 3월의 어느 아침입니다. 대를 이어 그 짓(?)을 일삼는 가공스런 그네들의 작태에서, 마치 브레이크 없이 벼랑을 향해 치닫는 폭주기관차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유쾌하지만은 않은 마음을 담아 이글을 올립니다.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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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특엄마의 프로필 사진
    기특엄마

    ㅎㅎ 기현아버님, 기현어머님, 쌍으로 그립습니다.
    고향방문 기획해 주세요~ 전 말보다는 행동을 좋아해요 ㅋㅋㅋ

  2. AlbertEinstein의 프로필 사진
    AlbertEinstein

    아 이게요 관리자 아이디인데
    제가 하도 아이디랑 패스워드를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하니까
    최원석 박사님이 이거 만들어 주면서
    “이젠 더 만들 아이디 이름도 없으니 그냥 이거 쓰세요”
    해서 제가 아인슈타인이 되었답니다. ㅎㅎ

    김 교수님 가까이 살다보니 이 동네도 금년 눈 엄청 왔습니다. ㅎㅎ

  3. 기현애비의 프로필 사진
    기현애비

    @기현애미 진심이 느껴지는 사과 잘 받겠습니다 ㅋㅋㅋ @AlbertEinstein 근데, 목사님 아뒤가 바뀌셨나요? 아님 삯꾼의 영어식 표현인가요 ㅋ 사순절이랍시고 겨우 이렇게 교회홈피 방문해서 인사드립니다 ㅠㅠ 제가 떠난 덕분에 커네티컷은 무지 건조한 겨울을 보내셨다는 후문이 ㅎㅎ 자주 좀 들락거리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시구요~~~

  4. AlbertEinstein의 프로필 사진
    AlbertEinstein

    어제 밤 오로라 보셨어요?
    그건 적록 구별없이 그냥 흐르듯 하던데요….
    밝은 빛으로 말이죠.

    세상의 빛과 어둠을 구별 할 수만 있다면 색깔이야 늘 무지개 아니던가요?

    박근혜에게 거울 보내기 모금 운동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네 꼬라지를 좀 보라고 말이죠

    김교수님의 글 고맙습니다.
    그런데 김 교수님 보스톤으로 가시니 보스톤이 백년만의 폭설에 … ㅎㅎ

  5. 기현애미의 프로필 사진
    기현애미

    미안합니다, 이제부터 색약이라 놀리지 않겠습니다. 멀쩡한 눈으로 세상을 왜곡해서보는 못된 놈들만 골라 조롱하겠습니다. 오늘 일찍 집에 들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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