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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7 2014

사순절 이야기 – 03 ‘가치감수성에 대하여…’

예전에 쓰나미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죽는 사건이 있었을 당시,
그 섬에서 쓰나미가 바로 코앞에 올 때까지 위험을 느끼지 못한 유일한 동물이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최소한 한 시간 전에는 위험을 느끼고,
새들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고,
곤충들을 비롯한 다른 동물은 그곳에서 이동하려고 했는데 말이죠.

사람도 따지고 보면 동물인데,
‘왜 다른 동물들이 다 가지고 있는 위험을 느끼는 감각이 쇠퇴했을까?’ 하는 문제의식 이었습니다.
사람이 지구상의 먹이사슬에서 최상층에 놓인 삶을 오랫동안 살다보니,
위험을 느끼는 감각을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무감각해졌다는 것이죠.

미국에 와서, 한국에서 길을 건널 때 자동차의 눈치를 보는 삶을 너무 오랫동안 살아서 그런지,
미국 보행자들이 자동차 눈치를 안보고 제가 보기엔 위험할 정도로 길을 건너는 문화에 당황했습니다.
오히려 자동차가 보행자의 눈치를 보더군요.

UCONN 곳곳을 걸어 다니며,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높인 거의 모든 시설물들을 보며 이곳에선 당연한 것이 왜 한국에선 ‘장애인을 위해’라는 거창한 목소리를 높여야 무엇인가 돌아보는 사회가 되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감각. 참 무서운 녀석입니다. 민감해지기도 하고 무감각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철 들었네’라는 말은 제 철의 흐름을 알고 그 철에 맞는 일을 할 줄 안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전엔 농사가 아주 중요해서 계절 (철)의 흐름에 맞게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 가장 철이 든 사람이기 때문이었죠.
이젠 세상이 변해 제 철에 나는 음식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철이 든다는 것이 너무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다른 이에게는 위험한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감각,
나에겐 좋은 것이 다른 이에겐 안 좋을 수도 있겠다라는 감각,
나에겐 옳은 것이 다른 이에겐 틀린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감각,
나에겐 별다른 이야기가 아닌 것이 다른 이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감각 등등등
다들 그 감각이 쇠퇴하지 않고 잘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초중고등을 거치는 교육과정 동안, 우린 학생들을 무감각하게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중등대안학교를 설립하면서 교육철학의 하나로, ‘가치감수성을 배우는 학교’를 두었었습니다.
많은 학부모들이 ‘가치감수성’이란 단어에 왈가왈부를 많이 했었죠. 학교철학은 알기 쉬워야 하는데 알기 어렵다구요.
이미 대안학교를 꿈꾸는 분들에게도 가치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자라는 것이 낯설고 어색한 단어가 되었던 것이죠.
다행스럽게도 제가 설립에 참여했던 ‘더불어 가는 배움터 길’이라는 학교의 교육철학에는,
“가치감수성을 배우고 실천하는 학교”가 남아있습니다.

살면서 돌아봅니다. 가지고 있어야 할 감각인데 어느 순간 무감각하게 된 건 아닌지 하구요.
여러분들의 ‘가치감수성’은 어떠하신지요. 한번쯤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2 comments

  1. 기특이 엄마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이 세우신 대안학교, 한국 돌아가서 근처에 산다면 우리선아랑 같이 입교^—^하고 싶네요.

    하나 덧붙이고 싶은 말.
    유콘에 와서 장애인접근 시설을 보고 처음에 저도 “와아~~” 감탄했습니다.
    허나, 제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신체장애가 있어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유콘 학생입니다), 이제는 감탄사가 “에휴—“로 바뀌었습니다. 대부분 장애인접근 자동문이 있지만, 막상 고장나 있는 경우가 태반이어서 정작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거나… 되긴 하는데 아주 구석진 곳에 위치해서 빙빙 돌아가야 한다거나… 여튼,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다니는 건물마다 자동문을 테스트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정말이지 안될때가 징하게 많더군요 (일례로 제가 늘 머무는 클리닉 건물은 자동문이 되는 경우가 30%, 안되는 경우가 70%입니다).

    고쳐달라고 부탁해도 그게 그날 하루 뿐, 근본적으로 문을 고치주지 않아서, 오래된 건물의 오래된 자동문은…정말이지 무용지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게 닫친 문 앞에서 그저 한숨을 푹 내쉬며.. 다행히 휠체어를 타지 않아 다른문을 이용할 수 있는 저는, 그저 한숨한번 폭 쉬고 건물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문이 열리지 않아 다른 이가 지나칠 때까지 그 문앞에서 하염없이 서성이고 있을 학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힙니다. 그러나 몇 번의 시도에도 별 변화가 없었다는 과거의 경험을 되뇌이며, 스태프 멤버에게 문 상태를 보고하지 않고 그냥 치료사대기실로 곧장 걸어가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이게 그 무서운 무력감인가 봅니다.

  2. “가치 감수성” 맞습니다.
    그럼에도 어쩌면 점점 무감각해져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 사회의 “가치”에 대한 기준 파괴가 너무도 심각한 수준을 넘어섬으로 하여 “가치”라는 것 자체가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치”에 대한 절대적 “가치”는 있는 것일텐데…
    다시 고민해 봐야 하겠습니다.
    과연 “가치”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 말입니다.
    생각케 하는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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