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일광절약 시간제에 따르면 3월 29일이 되려면 12시간도 더 남았지만, 한국 시간으로는 10분 정도 밖에 남지 않았고, 또 월요일에 정신없이 하루가 시작하면 동부시간으로 29일에 맞춰 글을 올릴 수 없는 이유로 미리 올립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제가 전임교수가 되고 보낸 첫 4주의 이야기를 한 주간의 일정으로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저도 일과를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씁니다.
3월 1일자로 임명장을 받고 그날부터 계산하여 급여는 받지만, 우리 사회의 많은 곳에서 비공식적으로 그렇게 하듯이 2월 막주부터 본격적인 교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주에 신임교원 교육, 대학 전체 교수 회의, 학과 첫 모임 등으로 바빴는데 마침 그 주 목요일 저녁으로 한참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한국의 제 모교 대학교 은사님의 정년퇴임(기념)식을 갖었습니다. 한 오지랖(오지랍?)을 하는 저로서, 그 행사와 기념 논문집을 자청해서 했습니다. (일복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 주에 서울과 아산을 왔다갔다 여러 번 했습니다.
3월 첫주에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맡은 과목은 영어음성학, 고급영문법, 시사영어1입니다. 각각 3학점으로 총 9학점이고 수업이 화,수,목,금요일 4일로 나누어 있습니다. 월요일은 제 학교 순천향대학교에 수업이 없고, 소위 “연구일”이라 하여 학교에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되지만, 오후에는 나갑니다.
제 한 주간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려우나, 대략 금요일 오후 6시쯤이 한 주간이 시작하는 때입니다.(공교롭게도 전통적인 안식일과 시간이 아주 비슷합니다) 학교에서 수업이 3시쯤 끝나면 짐 싸가지고 운전을 하든 수도권 전철 1호선을 이용하든 서울로 향해서 6시 정도면 세 여인네가 기거하는 안국역 근처 보금자리에 도착합니다. 그러면 저녁을 같이 알콩달콩 먹고, 간간히 사람들을 만납니다. 제가 스토어스에서 신세진 많은 분들을 한 분씩 만나려고 합니다. 그렇게 먹고 얘기하고 집에 와서 자고, 토요일에는 인 시스터즈가 학교에 가든 안가든 장을 같이 봅니다. 한 달에 한두 번 학회, 강독회가 있으면 거기에 갑니다. 갔다 와서는 집에서 잡다한 일도 하고 식구들과 TV를 보든지 얘기를 하든지 컴퓨터 게임을 하든지, 악기 연습하는 것 보고 틀렸다고 잔소리를 하든지 합니다. 토요일 저녁은 주로 제 옛 친구들을 만납니다. 대학교, 초등학교 친구들이 대다수입니다. 엊그제는 출판사 직원과 중국집에서 먹었습니다. 일요일/주일을 보내고 오후부터는 한 주의 업무를 위해 준비합니다.
월요일 아침이면 다같이 나서서 인 씨스터즈를 학교에 내려주고, 김 교수는 자기 직장으로 가고 전 이번 학기는 모교인 서강대학교로 갑니다. 거기서 10부터 1시까지 대학원 음운론 수업을 합니다. 제 전공이 언어학(형태론,음운론)인데 실험이나 교육 쪽이 아닌 이론 분야라서 요즘은 인기가 없고 그 과목에서도 학생이 3명이었는데 그나만 한 명은 개인 사정으로 휴학해서 앞으로는 2명과 아기자기하게 수업합니다. 수업이 끝나면 정신 없이 아산으로 갑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월요일엔 순천향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데, 첫 해에 군기가 잘 들었다는 걸 보여주고, 또 학교에 있는 책과 자료로 다음 날을 준비해야 하고 또 저녁도 구내 식당에서 먹으러 항상 갑니다. 게다가 최근에 얼떨결에 가입한 교수 배드민턴 클럽에서 매주 월요일, 수요일 저녁 8시쯤부터 한 3-4 시간을 보냅니다. 실제로 배드민턴을 치는 것은 2시간 정도이고, 그 뒤 도고온천으로 가서 온천물에 몸을 담근 후, 마음이 맞거나, 그날 전승을 한 회원이 있으면 간단하게 한 잔(알코올이든 아니든) 하러 갑니다. 그리고 숙소에 오면 그냥 잠이 듭니다. 제 숙소로 학교 앞에 있는 12평 작은 원룸 아파트를 얻었습니다. 지역 거주 주민을 위한 한국에 흔히 있는 그런 아파트도 있고, 학생이나 근처 회사 직원들이 저처럼 혼자 (또는 둘이) 임시로 기거하는 원룸 아파트도 많습니다. 월세인데 보증금이 두 달치이고, 단 일년치 월세를 처음에 일시불로 다 내는 식으로, 주인이 약간 횡포를 부립니다.
화요일에 순천향대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화요일엔 수업이 두 시간인데 그날 수업 준비는 그 전에 하고, 수업 후에는 그 주의 다른 수업을 준비합니다. 첫 학기라 욕심부리며 이것저것 많이 하고 숙제도 많이 내줘서 손 가는 게 좀 많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에는 대학신문 영자면 기사를 위한 회의를 합니다. 영자면 편집자 교수님과 또 저 그리고 영문과에 있는 영어모국어화자 교수 둘과 회의를 합니다. 그 결과를 가지고 다음 날 학교 신문사로 가서 맥 컴퓨터로 조판을 합니다. 수요일은 수업이 좀 많지만, 전공수업이라 부담은 훨씬 덜합니다. 그날 영자면 조판을 끝내면 9시에서 10시 사이가 되서 배드민턴 클럽에 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신선놀음”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목요일과 금요일도 수업이 비슷하구요, 학생들 만나고 수업 준비, 제 “연구” 등등으로 시간이 아주 잘 갑니다.금요일 수업이 끝나면 정신 없이 짐 챙겨서 서울로 갑니다.
이렇게가 제가 순천향대학교에 와서 보낸 첫 4주동안의 한 주간의 생활이었습니다. 너무 좋죠? 저도 좋아요. 학교 전체 분위기, 학과 교수님들의 분위기, 학생들도 다 좋고, 소위 “근무 조건”도 좋은 편입니다. 며칠 전에 첫 월급을 받았는데, 아직은 처음이라 액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세금과 각종 공제가 생각보다 많았구요. 아직도 갚아야할 전세대출금이 엄청난데…
이상은 사순절과는 별 관련 없는 일주일 단위로 반복되는 교수의 생활이야기였습니다. 교회에서도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일년 단위로 대림절(Advent)-성탄절(Christmas)-주현절(Epiphany)-사순절(Lent)-부활절(Easter)-성령 강림절(Whitsunday) 등의 교회 절기를 제정하여, 매년 반복되는 삶을 단위를 지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고 있는데, 이렇게 똑같이 반복되는 절기가 때론 색다른 의미로 다가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매주, 매학기 반복되는 일상이 그저 아무 생각없이 시간이 가고 돈만 버는 그런 일상이 아니라,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훌륭한 연구를 하고, 학교 구성원과 원만한 생활을 하며 간혹 규모있는 연구과제를 획득/수주하고, 궁극적으로 의미있는 삶,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데 적극 동참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응원해주시고, 여러 분들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함께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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