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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5 2013

[사순절 이야기 18] 부모님 옛날 이야기 녹음하기

* 다음은 준우아빠(홍용철)가 쓴 글을 제가 올리는 겁니다~~

 

  부모님이 하시던 정월 명절을 재작년부터 서울에 계신 큰형님 댁에서 하기로 했다. 부모님 연세가 아흔이 다 되어 이제 명절을 치르기에는 버거우시기 때문이다. 제사들은 몇 년 전에 이미 육지에 사는 아들들이 물려받았으나 정월 명절만큼은 부모님에 계신 제주도에 내려가서 지냈었었다, 제주도 내려 갈 때마다 육지에 정착한 우리 형제들 가족이 부모님 집에 다 자기에 부족했고 가족 모두가 내려가는데 비행기비가 만만치 않았었지만 내려가면 초등학교 동창회도 하고 친척들에게 세배도 하면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살았던 고향의 끈을 흠뻑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명절을 서울에서 지내니 하루 아침에 고향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목동 큰형님 댁에서 명절을 지내고 정릉 처갓집을 가는데 세 시간이나 걸렸다. 차가 막히지 않았다면 30분이 채 걸리지 않을 거리다. 재작년에는 정월 명절 때 서울 시내가 텅비어 다른 도시에 왔다는 느낌마저 들었던 터라 올 정월 명절에 차가 막히는 사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향이 시골인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점점 서울에서 명절을 지내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 테니스 클럽 사람들 중 고향이 시골이지만 서울에서 명절을 지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명절 때 서울 시내 도로가 막혔던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분명 이런 경향이 한 요인일 것이다.

  고향과의 접촉이 없어진다는 것은 과거와의 접촉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편리한 현재만이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고 불편하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은 저멀리 까마득히 머리 속 추억으로만 가물거린다. 자동차 보기가 힘들고 호롱불이 까만 밤을 희미하게 밝히던 시대를 살았던 내가 그러한데 요즘 아이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고향을 가지 않으니 고향을 경험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않으니 고향이 화제가 되지 못하고 보고 듣는 것이 없으니 아예 고향에 대한 의식이 없어질 것이다. 사회는 이렇게 변한다. 처음에는 환경이 다음에는 의식이 바뀐다.

  서울에 명절을 지내려 오신 부모님께서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가셨다. 기회에 오래 전부터 마음 먹었던 것을 실행했다. 부모님께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신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대동아 전쟁, 4.3 사건 등 사는 것 자체가 힘겨웠던 시절 이야기를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와 함께 2시간 반 동안 녹음을 했다. 25년생인 어머니는 결혼하는 날에야 아버지를 보셨단다. 책에서나 보았던 이야기를 내 부모님께서 겪으셨다니! 그리고 이 사실을 아직껏 자식인 내가 모르고 있었다니! MP3로 녹음됐으니 이제 차를 운전하면서 마치 음악을 듣듯이 부모님 목소리로 부모님이 살아온 역사를 들을 수 있다. 이제 기회 있을 때마다 아이들 키우던 이야기, 농사 짓던 이야기, 음식 이야기, 관혼상제 이야기 등 여러 가지를 녹음할 생각이다. 이번에 녹음한 것을 형님들께 이메일로 보내드렸더니 모두들 좋아하셨다. 부모의 인생을 궁금해 하지 않을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하여 내가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고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있고 내 자식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나를 이해할 수 있다면 세대 간의 간극이 조금이라도 메꿔질 것이고 가족 간의 정이 조금이라도 깊어질 수 있다면 금상 첨화이겠다. 이제 더 이상 명절 때 고향에 못 내려가는 것이 편리함만을 쫒는 현대가 준 병이라면 부모님 목소리가 전해주시는 옛날 나의 고향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문명의 기기가 준 약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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