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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 2014

꺼내라!

이차세계대전 중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는 한 명이 탈출을 하면 그에 대한 보복으로 모든 유대인 수용자들이 보는 앞에서 세명을 교수대에 매달았다고 한다. 한명의 남자, 한명의 여자 그리고 한명의 어린아이…

어른들에 비해 몸무게가 적은 어린아이는 금새 숨이 끊어지지 못한 채 교수대에 매달려 비명과 몸부림을 치며 고통속에 죽어갔다고 한다. 모든 유대인 수용자들은 그 어린아이의 죽음을 바라보며 ‘하나님은 과연 어디에 있느냐?’고 울부짖었고 마침내 그들은 그 어린아이와 함께 교수대에 매달려 처참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육백만명의 유대인들이 학살 당한 유대인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항상 나는 ‘왜 그들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죽어야만 했을까?’ 하는 것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불과 백여명의 경비군인들에 의해 어떻게 수천 때로는 수만의 유대인들이 시키는 대로 줄을 지어 깨스실로 걸어 들어갔을까? 열명이 아니 오십명이 한 명의 군인을 대상으로 대항을 했었더라면, 싸웠더라면 비록 천명이 죽고 오천명이 죽는다 하더라도 십만명이 살고 백만명이 살 수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들은 기껏 처참하게 죄없이 죽어가는 어린아이의 비명 소리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나약하고 비겁한 신앙 합리화 속에 그저 웅크리고 있었을까?

부정과 부패, 무능과 불신의 바다로 침몰해가는 세월호 안에서 김시연 학생은 이렇게 기도했다.

[우리 반 아이들 잘 있겠죠? 선상에 있는 애들이 무척이나 걱정됩니다. 진심입니다. 부디 한명도 빠짐없이 안전하게 (수학여행) 갔다올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그리고 이 어린 여자 아이의 기도는 그 바다속에서 끊어져가고 말았다.

지금 다시 묻는다. ‘하나님은 어디 있는가?’
지금 다시 대답한다. ‘저 차가운 바다에서 고통 중에 죽어간 어린 생명들과 함께 빠져있다’고.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명확해진다.
꺼내라, 꺼내야 한다.
그 어린 아이들의 꽃같은 고귀한 몸을 꺼내듯 하나님을 꺼내야 한다.

권력이 정의가 된, 가진 자들만의 대물림이 공평이 된, 경찰 차벽에 둘러 싸인 곳 만이 평화가 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꺼내라, 하나님을 꺼내서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있는 세상을 만들어라.

우리는 수용소의 포로가 아니다.
언제까지 ‘하나님은 저 차가운 바다에서 고통중에 죽어간 어린 생명들과 함께있다’라는 자조와 절망속에 웅크리고 있을 것인가?

분노하라, 일어나 외쳐라 그리고 하나님을 꺼내들고 싸워라!
시연이의 기도가 부디 한 명도 빠짐없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온 땅에 울리도록…세월호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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