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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 2011

국어사전

요즘 핫한 수목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대왕은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 줍니다. 그 중에서도 ‘빌어먹을’ ‘제기랄’ 등등등..
대사…참, 신선합니다. 지식과 인격을 갖춘 왕이 시원하게 욕을 해주니,
시~원합니다. 또한 안타깝기도 합니다.
반면, 나도 저른 욕 정도는 써도 돼!! 라고, 자기최면 아닌 최면에 걸려 있나 봅니다.

사실,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오늘 말씀 중에 ‘제기랄’이란 단어를
쓰신 후 ‘우라질’이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너무 드라마에 동화된 것일까요?
그래서, 정말 내가 바른 단어를 쓰고 있는지 궁금하여 국어사전 뒤져보니,
다음과 같은 뜻이 있더군요..

우라질 : [감탄사] 일이 뜻대로 안되거나 마음에 안 들 때 혼자서 욕으로 하는 말.
제기랄 : [감탄사] 언짢을 때에 불평스러워 욕으로 하는 말.

저도 참…..ㅈㅈ

3 comments

  1. 의 프로필 사진

    ‘제기럴’
    어감이 좋지 않나요? 나만 그런가요?
    국어 사전에 ‘욕’이라고 나와있다고는 하지만
    욕이란 것은 그 대상이 있어야 하잖아요.

    예를 들어 ‘이명박 개새끼’ 그러면 이명박을 대상으로 하는 욕이 되겠지만
    이명박 앞에서 ‘개새끼’ 그러면 주어가 없음으로 욕이 아닌 것 처럼.

    ‘제기럴’은 ‘제기럴 놈’이라고 할 때, 그 어떤 ‘놈’이 대상이 되니까 욕이 되겠지만, ‘놈’을 빼고 그냥 ‘제기럴’ 그러면 다소 자조적인 분위기도 나는 것이 욕이라고 생각 되기보다는 그냥 김 선생님 말씀 처럼 ‘투덜거림’이라고 느껴지거든요. 이 험악한 세상 살아가면서 이런 ‘투덜거림’도 없다면 생존이 가능할지… ㅊㅊ

    혹시 예수가 ‘제기럴’이라는 말을 알았더라면 애용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찌 들어 보면 귀엽기도 하고…. ㅎㅎ

    저도 종종 써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 Choonah

    제기럴, 제길헐… 등은 국어사전에 수록되어 있지 않네요.
    불어에 merde란 단어가 있습니다. 원래는 ‘똥(!)’이라는 뜻인데 ‘제기랄, 아이씨, 우라질, 씨x…’ 등 다양한 강도의 의미를 지니는 감탄사로 정말 자~주 쓰이는 단어죠. 예전에 같이 살던 연세 지긋하신 프랑스 수녀님들도 툭하면 때론 시원하게, 때론 귀엽게 “Merde!”라고 외치곤 하셨답니다. 그 때부터 merde라고 하기도 뭐하고 ‘씨x’는 말해 본 적이 없는지라 제.기.랄.이라며 책을 읽듯 또박또박 혼잣말을 하던 것이 살짝 말버릇이 되었나 보네요. 의식하지 못하고도 사용한 걸 보면… 제게 ‘제기랄’은 ‘사납지 않은 자기 투덜거림’ 정도의 의미인 것 같습니다. 좌우튼 그리 썩 좋은 단어는 아니니 좀더 때와 장소를 가려서 사용하도록 조심(!)해야겠네요…^^

  3. 장호준

    아 물론 “제기랄”은 욕 맞습니다.
    하지만 “제기럴”은?
    김 선생님이 기분 좋을실 때 쓰시는 말 아니였나요? ㅎㅎ

    참고로 오늘 설교 중 “제기럴”이 사용 된 부분을 옮겨 드리면, 오늘 비디오 안 찍었으니까요…

    “구약 성서에 나타난 기적의 사건에서는 이로 인해 얻어진 이득이 기적을 일으킨 주체 측에 서 있었던 자들에게 돌아갔고, 더 정확히는 그 반대편에 있었던 자들이 당한 치명적 손실을 통해 이득을 얻게 되었다는 것에 반해 신약 성서에 나타난 예수의 기적 사건에서는 기적으로 인해 발생한 이득이 기적을 일으킨 주체인 예수에게 돌아 온 것이 아니라 기적 사건의 대상자인 병든자, 배고픈자, 죽은자에게 돌아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 성서가 말하는 기적사건에서 그 결과가 기적을 일으킨 주체에게 승리와 기쁨을 주어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었던 것에 반해 예수의 기적 사건은 기적의 주체인 예수에게 승리와 기쁨이 아니라 고통과 죽음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복음서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살려준 기적의 사건 이후부터 유대교 제사장들과 율법주의자들은 ‘저거 그냥 둬서는 안되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예수 제거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 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냥 모른척 하고 있을 것이지 무엇 때문에 앉은 뱅이를 고쳐 줍니까?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배고픈 자들을 먹여 줍니까? ‘저 미친놈’하는 손가락질을 받음으로 사회로부터 멸시받고 소외된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고, 죽은 자를 살려주는 것이 과연 예수에게 무슨 이득이 되었겠습니까?

    물을 포도주로 변화 시키는 기적의 능력이 있다고 했는데 그럼 양조장이나 차려서 포도주나 만들어 팔면 당대 최고의 양조장 주인이 되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우리는 매일 기적 속에서 산다고 저는 믿습니다. 혹은 기적 속에 산다고 하지는 않더라도 기적을 바라며 살기는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기적을 바라는 마음 속에는 이 기적이 내게 가져다 줄 이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로또가 당첨되는 기적을 바라면서 ‘이 로또가 당첨되면 내게 고통과 희생이 따르게 될꺼야’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그런 기적은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바라는 이 기적을 통해 누군가 희생되고 그 희생으로 인해 내가 산다라는 생각을 기적이라는 단어의 의미, definition 에 넣어 둔다는 것입니다.

    아니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지는 않더라도 이 기적을 행함으로 해서 내게 고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기적은 기적을 베품으로 해서 자신이 죽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 해서 기적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여러분,
    기적은 살리는 것입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너를 죽여 나를 살리는 사건을 기적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나를 죽여 너를 살리는 것이 기적이라고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몇 주간 내내 공부시킨다고 한 시간씩 하더니만 오랫만에 설교를 해도 꼭 이런 설교만 하고 있으니, 김 XX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실명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ㅎㅎ) 선생님의 표현을 쿼트 해 보자면 ‘제기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 부분은 오늘 설교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미 동지들께서는 감 잡으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혹시 설교 전체를 듣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보충 설명을 삽입하자면 ‘너의 희생으로 내가 득이되는 기적을 바라든지 아니면 내가 죽어 너를 살리는 기적을 만들든지…)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십시오.

    기도합시다.
    하나님, 기적을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기적을 만드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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